이웃집에 '위로' 응원 문구 붙이고
농촌에서 문화예술 즐기고 싶다는
하고싶은게 많은 1999년생 이야기
그는 실패 두려움 없이 빛을 내며
생각대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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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두 학기 째 학생 없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외로움마저 느끼던 차에 한국문화의집협회에서 '생활 인문 릴레이 포럼'에 참석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이야기 나눌 주제가 무엇인지 살펴봤더니 '사회적 유대, 너를 쬐어야 한다'는 제목이 보였다. 바로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싶어 냉큼 달려갔다. 지난 주 목요일 저녁이었다. 문화컨설팅 바라의 권순석 대표가 사회를 맡고 마을운동가 임선이 선생, 그리고 1999년생 해금연주가 곽도연 청년이 초대 손님으로 참여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선이 선생은 빛고을 광주에서 오랫동안 마을 만들기 운동을 실천해온 분이다. 뒤에 전해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지난 2005년 광주 북구문화의집에서는 '문흥동 살림살이전'을 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집 구석구석을 뒤져서 발견해 낸 모든 것들을 전시했는데 그 중에는 오랜 세월 작성해온 가계부도 있었다. 거기에는 월급이 얼마에 육성회비는 얼마, 버스요금과 전기요금, 두부와 콩나물 가격이 얼마였는지 모두 기록돼 있었는데, 1980년 5월에는 유독 버스비 지출 항목이 없었다고 한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이 버스를 무료로 운행했다는 사실을 증언한 셈이다. 그곳이 폭동의 현장이라고 보도한 당시 언론보다 평범한 시민의 가계부가 더 정확하게 광주의 진실을 기록한 것이다.

대구에서 올라온 곽도연씨는 '동거, 남(=타인)'이라는 이색적인 이름의 인문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지난 7월부터 집에 돌아오면 힘내라는 응원 문구를 적은 쪽지를 이웃집 문에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선택한 문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말한 "내 기분은 내가 정해. 나는 오늘 행복으로 할래", 곰돌이 푸가 말한 "매일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와 같은 명언들이었다. 때론 그날 자신을 위로해주었던 노랫말을 적기도 하고 그날 자신의 집에서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과일이나 음식을 적어놓기도 했다.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다가 어느 날 쪽지에 쓰인 문구로 위로받았다는 메시지가 왔다. "저도 타지에서 올라와 살고 있어서 응원 문구에 크게 공감했어요.", "오늘도 쪽지를 보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 반응이 오자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곽도연씨 자신이 위로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웃과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택배를 보관해주거나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실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그는 우리가 농촌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농촌에 계시는 어르신들은 한 분 한 분이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이 하는 고추장 담그기나 종이를 꼬아 장식품을 만드는 일 등은 그 어르신만 가지고 있는 소중한 기록이라는 이야기였는데 그 말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농촌에 계시는 어르신 한 분이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그분들만 알고 있는 삶의 비결과 순박한 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찾아간 농촌은 우리 같은 청년을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그 곳을 저희는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앞으로 농촌으로 가서 그곳의 어르신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고 함께 문화 예술을 즐기는 농촌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날, 만들어진 마을에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만드는 일을 꿈꾸는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었고,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청년은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대는 제 스스로 빛을 내는, 청년이라는 이름의 광원(光源)이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