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003년부터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사망자는 총 1만3천799명으로, 하루 평균 37.8명이 스스로 생명을 끊었다. 10~30대의 사망원인 1위, 40·50대 사망원인 2위가 자살이다. 지난 10년간 자살 사망자가 십 수만명에 이른다면, 국민 대부분이 한 번 쯤은 가까운 이의 불행한 죽음을 경험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크게 변화했다. 과거에는 자살의 원인을 개인의 심신미약 탓으로 여기기 십상이었지만, 이제는 사회적 타살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아가는 중이다. 청소년은 진학 스트레스와 학교폭력, 청장년층은 경제생활, 노년층은 질병과 빈곤이라는 사회적 한계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비방과 비난으로 도배된 SNS는 유명인들을 겨냥한 죽음의 덫이 됐다.
이제 낭만적인 베르테르식 자살 미화는 가능하지 않다. 언론은 자살이라는 용어 사용 자체를 자제한다. 정부는 온갖 정책으로 자살로 인한 6조원대 사회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자살률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모방을 부추길 유명인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말 설리, 구하라의 극단적 선택이 있었고 올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그랬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자살예방 대책은 쏟아지지만, 실제로 자살 예방을 위한 상담과 약물치료는 빈약한 점이 뼈아프다. 자살 전조를 보이는 사람들이 전문적인 상담을 받지 못하고, 우울증 환자들은 넘쳐나는데 정신과 치료와 약처방을 받는 사람은 드물다. 정책은 있지만 시스템과 인식은 제자리라는 지적이다.
씩씩하고 건강한 웃음을 선사했던 개그우먼 박지선씨가 모친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화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한 피부 때문에 고통받았다지만, 그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고 활동해왔기에 큰 충격을 주었다. 분명 두 사람을 꼼짝할 수 없게 만든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뿐이다.
동료 개그맨 김영철의 추모사가 긴 여운을 남긴다. "난 지선이에 대해 모르고 있는데 작별을 해야 하니 미안하다. 누군가에겐 엄살이겠지만 아프고, 힘든 얘기들 많이 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못 알아차릴 수도 있으니 더 많이 표현하는 하루 됐으면 한다." 우리 사회를 향한 메시지로 손색이 없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