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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조작 사건등 검찰 왜 침묵하나
부족한 의사 늘리는데 왜 반대하나
통제·연민없는 권력·분노 악 낳을뿐
'계약금 대신 스태프 월급인상 요청'
'아이유' 검사·의사보다 훨씬 훌륭


정한용 시인
정한용 시인
이전 칼럼에서 밝힌 바이지만, 필자는 34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공립학교라서 4~5년마다 근무지를 옮겨 모두 10여 학교를 거쳤다. 그중에는 서울의 'SKY 대학'에 합격생을 많이 내는 소위 '명문'도 있었는데, 그때 교사로서 느꼈던 좌절감은 아직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에 익숙해 있으며,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의 합격을 위해서는 종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도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컨설턴트에 더 의존하곤 했다. 학교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입시와 먼 교육과정은 모두 무시했다.

한해 고3 학생이 대략 50만명 나온다고 할 때 겨우 1%만이 소위 '명문대'에 갈 수 있다. 너무나도 당연히 나머지 99%는 가지 못한다. 그런데 모든 고등학교가 그 1%에 교육의 초점을 맞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낙오할 수밖에 없는 99%를 루저로 만드는 슬픈 일을 수십 년째 반복하고 있다. 한편, 공부 잘하는 상위권 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예외 없이 검사나 의사가 되는 것이다. 개별 취향이나 소질은 중요한 척도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검사나 의사가 되려면 그 1% 중에서 다시 1%만 가능하니,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목표를 위해 젊음을 소진하는 것이다.

피나는 노력으로 좁은 문을 통과해 검사나 의사가 되었다고 해보자. 그들이 얻는 성취와 행복이 그에 비례할까. 권력과 돈이 따라오면 된 거 아니냐고, 요즘 세상에 그게 최고 아니냐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시험문제 풀이만 해온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훨씬 중요한 가치를 놓치곤 한다. 시험이라는 굴레 밖의 큰 세계에 대해 전혀 무지해진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 봉사를 해보지도 못하고, 문학과 철학이 건네는 삶의 질문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동료와 팀워크를 이뤄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지도 못한 채 성장기를 다 지나간다. 돈과 권력을 얻는 대신 영혼이 빈곤한 메피스토펠레스의 후예가 된다.

요즘 검사들의 '커밍아웃'과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거부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누구라도 국가정책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다. 더구나 검찰과 의사는 손에 무서운 칼을 든 집단이기에 누구보다 큰 소리를 낼 수 있고, 시위 몇 번으로 모든 언론이 주목해주니 자기주장을 알리기도 쉽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검사들은 예전 같으면 없는 범죄도 만들 수 있고, 있는 범죄도 덮어 무마시키는 묘기를 부릴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러지 말라니 화가 치밀 것이다. 의사들은 환경이 낙후된 시골을 버리고 살기 편한 서울로 몰려가 돈 잘 벌고 있는데, 자신이 비운 시골에 새 의사가 들어가면 밥그릇을 조금이라도 떼어줘야 할 터이니 배가 아플 것이다.

국민들은 묻고 있다. 검찰은 예전 간첩을 조작한 사건에 대해, 조직 내부 범죄에 대해, 전직 대통령의 왜곡된 수사에 대해 왜 침묵하나. 누군가는 일가족을 이 잡듯 뒤지면서 또 누군가의 혐의에는 왜 한없이 관대한가. 또 의사에게 묻는다. 의사 수가 절대 부족한 걸 인정하면서 왜 의사 수를 늘리는 데 반대하는가. 공부 잘하는 의대생에게 묻는다. 지방대 표창장엔 거세게 항의하면서 교육부 감사에서 드러난 '명문대'의 비리에는 왜 침묵하는가. 왜 이렇게 검사의 정의는 선택적이며, 왜 의사의 분노는 그토록 이기적인가. 통제가 없는 권력과 연민이 없는 분노는 악을 낳을 뿐이다.

요즘 잘 나가는 가수 아이유, 그를 직접 가르친 선생님이 전하는 이야기이다. 고1 수업 시간에 있던 대화란다. "아이유야, 나중에 대학에 꼭 가서 대학 문화도 경험해봤으면 좋겠다." "선생님, 전 가수 할 거라서 대학은 의미 없어요. 생각이 바뀌면 도전해 볼게요." 이후 그는 진짜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 그녀가 얼마 전에 소속사와 재계약을 하게 되었을 때, '계약금 대신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40여명 스태프의 확실한 고용 보장과 월급 인상'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녀의 학력은 여전히 고졸, 하지만 나는 그가 지금의 검사나 의사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정한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