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결속 유지 美 연방민주주의 정신 배신
文정권, 단 한명 국민도 권력의해 분리 안돼
정권 연장위해선 통치 전면전환 결단할 때다
이 판결을 접하고 연평도에서 북한군에 사살된 공무원으로 생각이 번졌다. 해양경찰청은 지난달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피격 공무원의 '월북'을 실질적 '사실'로 확정했다. 월북 판단의 근거는 인터넷 도박 몰입, 도박채무, 꽃게 구매 대행 자금 횡령 등이다. 모두 정황 증거다. 그의 월북을 의심할 여지 없이 증명할 증거는 없다. 대법원 판례대로라면 피격 공무원은 '고의적인 월북을 단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다.
그의 월북 여부가 논란이 되면서, 정작 북한군에 사살된 대한민국 국민은 실종됐다. 더 심각한 건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명확한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자국민을 이적행위자로 '판단'한 사실이다. 증거가 없으면 무죄이듯, 증거가 없으면 월북이 아닌 원인미상의 사고에 머물러야 맞다. 더군다나 우리 국민, 그것도 공무원 아닌가. 어쩌면 그렇게 냉정한가. 그는 정황만으로 월북자로 대상화, 타자화돼 대한민국에서 분리되는 중이다.
피격 공무원뿐 아니다. 최근 정권에 불편한 집단과 현안들을 대상화시켜 사회와 공론장에서 분리하려는 의도와 의지를 드러낸 여권 인사들이 속출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광화문 집회 주동자는 살인자"라고 단정했다. 정권에 반대한다고 해도 '주동자'들은 '국민'이다. 코로나 방역을 방해한 사회적 도덕적 책임이 있다 해도 국민이 맞다. 사회적, 도덕적 비난이라는 정황만으로 '살인자'로 대상화해 분리할 수 없다. 박원순·오거돈 시장의 성 스캔들로 실시되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집단학습 기회"라고 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의 발언도 잔인하다. 회복이 불가능한 피해 여성들을 시민 집단학습의 도구로 대상화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서다. 정권에 호의적인 내재적 태도로 여가부 장관이 지켜야 할 여성은 타자화됐다.
당·정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당·정은 전 정권 적폐 수사 검사 윤석열에 환호했고,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당부하며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정작 윤석열이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나서자 검찰개혁의 적으로 규정한다. 윤석열은 전 정권 사냥을 위한 도구였다가, 이젠 정권을 위해 없애야 할 표적이 됐다. 검찰총장은 자율성을 잃고 식물이 됐다. 당정은 윤석열을 도구로 쓰다가 표적으로 세워 분리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지목했다. 검찰개혁의 본질인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실종됐다.
도널드 트럼프는 모든 반대자들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해 분리시켰다. 이익이 되면 도구로 쓰다가 실익이 없어지고 걸리적대면 폐기했다. 서슴없이 인종을 차별하고 계층을 분리했다. 반대자들을 표적으로 대상화 시켜 철저히 걸러내 지지층의 순혈성을 고도화하는 통치술이다. 포용과 결속으로 유지되는 미국의 연방 민주주의 정신을 배신했다. 그 결과 측근들과 가족들이 줄줄이 그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회고록을 출판하고, 사망한 공화당원 매케인이 애리조나를 민주당에 바치고, 공화당 원로와 의원들은 승복을 종용한다. 국민을 도구적 유용성으로 분리하는 대상화 정치가, 대상들의 역습에 의해 종식됐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도 흔들릴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사람을 이념보다 앞세우는 진보정권이다. 단 한 사람도 국민의 권리와 보편적 인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평생을 헌신했다는 사람들의 정치적 결사체다. 이런 역사적 이념적 배경을 가진 정권에선 단 한 사람의 국민도 권력에 의해 분리되면 안 된다. 정권 유지와 연장을 소망한다면 통치행위의 전면적인 전환을 결단할 때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