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소설 '만무방'은 벼를 스스로 도둑맞는 가난한 농부의 슬픈 현실을 담았다. 소설 속 '응오'는 순박하고 성실한 모범 농군이자 가장이다. 찌들게 가난해 피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삭초와 도지, 그리고 장리벼를 제하면 남는 것이 없어 빚만 늘어난다. 그는 지주의 착취에 맞서 논의 벼를 베지 않는다. 그런데 수확도 않은 벼를 닷 말쯤 도둑맞는다. 그의 형인 응칠은 전과자라는 자격지심에 누명을 벗고자 도둑을 직접 잡기로 한다. 밤샘 기다림 끝에 현장에서 괴한을 잡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인인 응오가 범인이다. 빚더미에서 벗어날 길이 없자 자작극을 벌인 것이다.
경기도의회 행정감사에서 농정해양위 김봉균 의원이 농작물 절도에 대한 당국의 대책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곳간을 털거나 재배 중인 작물을 가져가는 사례, 농기계 절도 등 질이 안 좋은 범죄가 많다"고 했다. 감시가 소홀한 주말농장은 온 가족이 땀 흘려 지은 농작물을 싹쓸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양주의 농촌 마을에는 '애써 키운 농작물 절도에 농부의 마음이 멍들어 가고 있습니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농작물 절도범들에 안타까운 농심(農心)을 전해보려는 고육책이다. 경찰도 바빠졌다. 가을철 내내 농축산물 절도 예방활동에 나서야 하는 실정이다. 경찰에 따르면 2017년 540건이던 전국의 농작물 절도 사건이 지난해 847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경기도는 560건(남부 425건·북부 135건)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66.11%) 것으로 집계됐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중·장년층에 '농작물 서리'는 동심을 소환하는 그리움이다. 한여름에는 참외 수박이, 가을철에는 사과 배가, 겨울에는 닭과 오리가 수난을 당했다. 밭과 과수원, 농장주들은 불청객을 막기 위해 원두막을 짓고, 숙식을 해결하며 작물을 지켜야 했다. 그래도 막상 서리꾼을 붙잡으면 따끔하게 야단을 치는 게 고작이었다.
서리는 '떼를 지어 남의 과일,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인 정도를 말한다. 그러니 주인들도 너그럽게 봐주는 거다. 하지만 계획적으로 남의 작물을 대량으로 훔치는 것은 범죄행위다. 6년을 기다린 인삼을 하루 저녁에 싹쓸이한다. 주인은 다 키운 자식을 잃은 심정이라고 한다. 농촌에 서리가 사라지고 대신 범죄가 들어섰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