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 소백·오대산을 찾았습니다
구름처럼 돌아본 부석사·선재길은
낙엽·단풍·석양… 가슴시린 황홀경
순리대로… 마음을 비우는 삶 생각
如如하게 '시작과 끝의 궤'를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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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시인
노을처럼 저물어가는 늦가을 날, 사흘간 소백산과 오대산 자락을 돌아보았습니다. 떠 있는 바위가 있는 부석사와 조선 유학의 산실 소수서원 등을 돌아보았지요. 깨달음, 치유의 천년 옛길이라는 고즈넉하고 붉은 단풍 물 젖은 선재 길을 구름처럼 돌아보았습니다. 청아한 물소리에 세상 걱정을 띄워 보내고 바라본 끝자락 단풍이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웠지요. 꽃비처럼 날리는 낙엽과 숨죽인 늦가을의 뒤태가 가슴으로 녹아들었습니다. 노을을 보며 귀 열고 순리대로 산다는 이순(耳順)을 생각했지요.

물 젖은 햇덩이가 새순 돋아나는 풋풋한 싱그러움이라면 중천의 태양은 질풍노도입니다. 짙푸른 하늘빛은 건드리면 터질 듯 찬란하지요. 하지만 빛이 너무 강합니다. 눈이 부셔서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지요. 저녁노을도 싱그러움이나 찬란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침이나 한낮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용이 붉은 여의주를 입에 물고 황금비늘 번뜩이며 한바탕 휘돌다 사라지는 끝머리, 금빛 여운을 남기는 해 질 녘 노을은 아름답지요. 푸근하고 황홀합니다. 해넘이 후에도 그 빛은 한동안 남아있지요.

노을은 올려볼 필요 없이 앉거나 가볍게 서서 눈높이로 서로 마주 볼 수 있습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오랫동안 가슴에 담을 수도 있지요. 이순을 넘어선 중년의 몸짓처럼 여유로움과 평안함을 안겨주는 노을은 하루의 그림자라! 비록 해맑은 아침 햇살처럼 화사하지는 않지만, 깊고 그윽한 그리움에 빠져들게 합니다. 하루의 경계가 다 그러하지요. 한낮의 햇살이 그리워질 때도 있습니다. 하루를 지내온 순간들이 아무래도 어설프고 서툴렀다는 아쉬움, 그런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이겠지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습니다. 함께 가야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부축해주고 아프면 돌봐줄 수 있지요. 그런 세상이어야 합니다. 지천명을 넘기고 이순에 이르면 생각이 달라지기 마련이지요. 스스로 화두를 던지고 그 답을 스스로 찾기 때문에 삶에 대한 집착이나 두려움이 어느 정도 사라집니다. 한여름 그 붉게 타는 불볕더위와 지루했던 장마를 지나왔지만, 그 조차도 그립게 하는 게 가을이지요.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삶이 소중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사는 게 버거워 정신없이 지냈으나 지천명을 넘기니 삶에 대한 애착과 치열함이 새로 생겨나더이다. 주름살이 늘어나고 벗어진 머리는 그나마 반백(斑白)이지만,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지요. 외형은 비록 찌그러졌으나 생각은 깊이와 넓이가 더해지기를, 노을빛이 오래 사라지지 않는 여운을 남기는 것처럼 또 다른 삶의 몸짓이 새록새록 생겨나기를,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고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마음을 비우려 합니다. 시작과 끝의 궤(軌)를 놓치지 말아야지요.

노을은 그 자체로 넉넉하고 여유롭습니다. 기쁘고 슬프고 아름답던 순간을 모아 어머니 손길처럼 어루만져 보듬어주고 치유해주지요. 그 빛이 가슴으로 스며들어 찌든 삶의 더께를 말끔히 씻어줍니다. 노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숨결이지요. 지나보면 후회되는 일이 있지만 밤이 지나면 다시 물기 가득한 햇덩이로 솟구쳐 오를 것을, 가슴에 녹아들면 그 자체로 여여(如如)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기운이 생겨날 것을, 노을을 보며 새로운 내일을 풀어내는 꿈을 꿉니다.

/홍승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