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여 선거공학적 정책에 친문으로 세력화
야 무능·존재감 상실… 양당제 균형 무너져
자제·관용·사과·반성 '정치혁신'이 없다면
한국사회도 치유 불능의 분열 몰고 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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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절차적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에서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선거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예측불가능한 선거결과의 불확실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는 대통령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부 서울지역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을 앞서는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당이 우세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의 정당시스템으로는 시민의 이해를 적절히 조정하고 사회균열을 조율해 낼 수 있는 기능이 작동할 수 없다.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여당의 수적 우세와 무능하고 존재감을 상실한 보수야당이 정립하는 사실상의 양당제에서 정치적 균형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 4월의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은 재산세나 주식양도소득세 등 정부 정책조차 선거공학적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정책과 이념의 일관성을 상실하고 있다. 또한 민주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도전한다는 논리로 검찰의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의혹사건 수사를 정치수사·정치행위 프레임으로 설정하고 있다. 여당과 추미애 법무장관이 대검찰청의 특수활동비를 쟁점화하는 행태도 같은 맥락이다. 여당 의원 누구도 친문이라는 이름으로 세력화된 집단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정치양극화는 한국사회를 치유불가능한 분열로 몰고 갈 수 있다. 당파적 적대감이 지속되는 한 어느 세력이 선거에 승리하더라도 정치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회의 원심력만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미국의 바이든 후보가 당선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불복으로 인한 미국 내의 심각한 양극화의 골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국제사회의 주도권 회복은 요원한 길이 될 것이다. 바이든 후보가 승리 확정 언론보도 후 당선인 명의의 첫 성명에서 "분노와 거친 수사를 뒤로 하고, 국가로서 하나가 될 때"라며 통합과 화합을 호소한 것은 비단 미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말은 한국정치에 그대로 적용된다. 갈등의 관리는 결국 권력수단과 정책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권력집단이 시동을 걸어야 한다. 지금 민주당의 행태들은 권력의 자제와 상대에 대한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전제와 다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여야 모두 강경 세력의 지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 현실에서도 정당이기주의와 당파성을 완화한다면 강고한 지지층에 대한 설득으로 합리성과 보편성에 기반하는 정치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법원 판결에도 사과와 반성의 메시지를 내지 않는 국민의힘이나 김경수 경남지사의 댓글조작 사건에 대한 항소심의 유죄판결에 대한 여당 반응이나 시민의 관점에서는 도긴개긴이다. 이러한 매너리즘과 퇴행이 구조화된 정치구조에서 정치양극화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제도화나 행동을 실천에 옮긴다면 그 세력이 다음 대선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가 지향할 보편적 가치에 동의한다. 그러나 극단의 외피를 쓴 정치가 한국정치의 동력으로 기능하고, 강경 지지층을 의식한 과잉발언이 정치적 영향력 확대의 기제로 작용하는 한 정치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특히 집권세력의 일사불란한 단일대오는 과거 박근혜를 지지했던 강경보수의 이항대립자로서 설정된다.

자제와 관용의 덕목을 집권 세력에게 기대할 수 없다면 보수야당이 정치양극화의 악순환을 끊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합리적 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을 보여야 한다. 이 대장정의 시작을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행태에 대한 사과와 반성에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보수야당의 중도로의 클릭이 경북·대구, 이른바 TK의 지지를 잃을 수 있다는 케케묵은 고정관념에서 깨어나지 않는 한 양극화의 단절은 물론 야당의 승리도 힘겨워 보인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