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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경인일보에 실린 작은 기사가 뒤통수를 때렸다. 인천 한 초등학교가 졸업앨범 제작을 두고 고민 중인데, 110쪽 짜리 졸업앨범을 채울 사진이 부족해서란다. 코로나19의 악행이 민생을 도탄에 빠트린 것도 모자라 초등학생들의 학창시절 추억 마저 지워버린 현실에 탄식이 절로 터졌다. 1년 내내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을 오락가락한데다 소풍, 체험활동, 운동회 등등 학사일정이 모두 취소됐으니 급우들과의 단체사진이 있을 리 없다.

학교는 학부모와 상의한 끝에 학생 개인 사진들을 짝꿍끼리 붙여주는 식으로 편집해 앨범에 싣고, 남는 여백에는 아이들의 졸업소감을 담은 롤링 페이퍼로 채우기로 했단다. "함께 한 시간이 짧았다. 추억은 졸업하고 만들어가자", "마스크야 우리 내년에는 보지 말자", "마스크 꼭 버리고 중학교 갔으면···" 롤링 페이퍼에 남긴 아이들의 글들이다. 2020년 코로나 애사(哀史)로 부족함이 없으니, 오히려 더 짠해진다.

586세대가 기억하는 초·중·고교 졸업식 풍경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재학생과 졸업생이 졸업가를 주고 받으며 눈물바다를 만들던 엄숙한 시대의 통과의례는 '라떼는' 시절의 흑백사진에 박제됐다.

대신 신세대는 새로운 졸업문화를 만들어 즐긴다. 의정부 고등학교의 패러디 코스프레 졸업사진은 해마다 언론이 주목하는 뉴스토픽이 됐다. 졸업시즌은 전국의 학교들이 선보이는 톡톡 튀는 콘텐츠 경연장이 됐다. 반면에 건조한 장면도 있다. 개인정보 노출을 꺼려 졸업앨범 사진 촬영과 게재를 거부하는 선생님과 학생도 드물지 않아서다. 높아진 인권의식 만큼 학창시절의 추억이 흐려진듯 싶어 웃프다. 아무튼 신세대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졸업의 의미를 새기는 것이니, 기성세대의 기억으로 탓할 일은 아니다.

졸업앨범이 문제가 아니라 올해는 졸업식 자체가 열릴지 말지 장담할 수 없다.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 졸업식 자체가 전면 취소될 수도 있다. 수많은 동기동창들이 동시대의 공감각을 확인할 추억과 기억을 삭제당한다면 그만한 불행이 없다. 코로나 졸업앨범은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랄 뿐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