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프랑스군 포병대위인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독일 스파이 누명을 쓰고 군사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2년 뒤인 1896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진범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재심요구는 거부당했다. 당대의 지성 에밀 졸라가 총대를 멨다. 1898년 대통령에게 드레퓌스 구명을 요구하는 공개편지 '나는 고발한다'를 '로로르'(L'Aurore, 여명)에 게재했고, 프랑스를 비롯한 전세계 지성이 드레퓌스 구명에 뛰어들었다.
프랑스 군부는 생사람 잡은 '유죄'를 집요하게 회피했다. 재심을 열었지만 날조된 증거와 위증을 근거로 드레퓌스의 무기형을 10년으로 줄여주는데 그쳤다. 전세계에서 프랑스 보이콧 운동이 벌어졌다. 에밀 졸라도 나섰다. 다급해진 프랑스 군부는 무죄 대신 사면을 제안했다. 드레퓌스가 이를 수용했다. 그러자 그를 위해 구명에 나선 지식인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무죄 투쟁을 포기하고 사면 제안을 받아들인 드레퓌스에게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지옥 같은 감옥에서 벗어나고픈 드레퓌스의 간절함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당시 그는 감옥 생활로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였다고 한다. '드레퓌스 개인이 아니라 정의로운 조국을 위한 투쟁'이라는 지식인들의 명분은, 하루 하루가 악몽이었던 그에겐 '지적 허영'이거나 '감당할 수 없는 사명'에 불과했을 수 있다. 분명한 건 죄 없이 생매장 당한 사람의 심정은 당사자 아니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점이다.
지난 19일 수원지법 법정에서 검찰은 한 피고인의 무죄를 구형한 뒤, "검찰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피고인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사건의 범인으로 조작돼 20년 동안 감옥에 갇혔던 윤성여씨의 재심 공판에서 벌어진 장면이다. 윤씨는 2009년 출소했지만, 지난해 진범 이춘재가 자백하기 까지는 살인·강간 전과자였다. 시국사건 희생자도 아니니, 드레퓌스식 정치·사회적 구명운동은 아예 가능하지도 않았다. 윤씨가 자신을 범인으로 만든 경찰들마저 용서할 뜻을 밝히고, 모든 걸 '운명' 탓으로 돌린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윤씨에 대한 국가폭력 범죄는 명백하다. 검찰의 사과만으론 부족하다. 12월 17일 결심공판에서 나올 법원의 입장이 주목되거니와, 국가 차원의 사과도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