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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빈둥거려보면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 보이고

꿈의 목소리

그 목소리의 기울기가 보이고

뉘 치열한 성찰도 보인다



잠시 눈을 감아보자



미니스커트가 있고 그 밑에서

팬티 훔쳐가는 바람

불 꺼진 아버지

목화송이에 고추장을 발라놓고 위로하는

내가 있다



장독대 울타리 가를

'애순'이라는 어릴 적 여자도 왔다갔다

김영남(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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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키가 2m까지 자라는 치자는 습하고 그늘진 땅 그러나 따듯한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다. 보통 6~7월에 흰색 또는 노란색 꽃을 피워 올리는 이 꽃은 순결과 청결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으며 그 향기가 재스민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하다. 중국의 유마대사는 진리를 설명하면서 이를 가리켜 "치자나무 숲에 들어가면 치자 향기만 가득하여 다른 향기는 맡을 수 없다"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마치 진리와 같이 그것만이 '허용되고' 그것이 아닌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치열한 성찰'의 시공간으로 파악한다. 당신도 치자나무같이 그늘져 있지만 따듯한 기억의 숲으로 '잠시 눈을 감아'보라. '불 꺼진' 기억의 울타리 너머로 '왔다갔다'하면서 목 놓아 부르던 변하지 않는, 이름으로 덮여있는 '애순'이라는 어린 싹이 보일 것이다. 그것의 향기로 다른 향기를 마비시키는 힘도 거기서 나오는 것이니.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