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얻었다는 7300만표 의미
총선치른 우리 사회의 문제와 겹쳐
부동산값 급등·전세난·코로나 타격
'중하층 불만 고조' 간과해선 안돼
확실히 이상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늦어도 하루나 이틀쯤 되면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 정해지고 승자와 패자 사이에 어떤 정리 신호들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신에 트럼프 현 대통령은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며 우편투표다, 도미니언이 어떻다 하고 줄리아니, 파웰 같은 거물급 변호사들을 동원하여 연일 '비정상적인' 공세를 퍼붓고 있다.
어느 쪽이 맞고 뭐가 맞는 건지 모를 지경이라고나 해야 할까? 분명 조 바이든의 승리겠지 하면서도 또 어떤 언론인 말을 들으면 트럼프가 지금 이렇게까지 하는 것도 어느 시점까지는 아주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라고도 한다. 미국 헌법상 부여된 문제제기 절차요 기간이라는 것이고, 왕년에 부시 대통령이 재선될 때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면서 말이다.
승부가 어느 쪽으로 낙착이 되든 필자는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가 얻었다는 7천300만표라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사실 트럼프는 뉴욕타임스나 CNN 같은 주요 언론은 물론이요, 이번에는 폭스 티비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이런 정도의 득표가 가능했단 말일까? 더구나 이 득표수는 그가 힐러리 클린턴을 이길 때 얻었던 표보다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트럼프라면 그가 도전할 때나 처음 당선될 때 공화당에서조차 빈정거리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많은 득표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사실 언론에 비친 트럼프는 그 과장스러운 표정하며 몸짓에, 신뢰가 가지 않는 '워딩'으로 인해 광대나 광인 같은 느낌을 주기까지 하는데, 이런 사람을 공화당 후보로 다시 옹립한 것은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치고 그 많은 사람들이 지지 투표를 한 것은 결코 예삿일이라 할 수 없다.
여기에는 점점 양극화되는 미국인들의 속사정이 개입해 있다고 해석해 볼 도리밖에 없다. 그런데 이 양극화는 흔하고 '전통적인' 좌우 대립,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아니라, 이념과 상관없이 부와 권력을 누리는 상류계층, 기득권층, 부유층과 그로부터 소외된 중하층 국민들 사이의 양극화라는 점에 초점이 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이제 백인들도 많은 경우 가난하고 히스패닉도 어떤 의미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할 수 있는 토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요 언론과 미국인들의 저층, 밑바닥 민심은 심각하게 괴리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이민자들이나 이방인을 향한 인권, 평등권 보장이나 환대의 원리도 중요하지만 당장 장벽을 헐음으로써 입는 경제적 타격과 정치적 소외감을 이미 많은 미국인들이 느껴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 선거의 의미는 바로 올봄에 총선을 치른 우리 사회의 문제와 겹쳐지는 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총선은 지금 여당의 압도적 승리로 귀결되었지만 바로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가고 전세난이 일고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커짐에 따라 중하층 국민들의 비판과 불만이 현저히 고조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이런 불만이 곧 상대 진영의 지지로 옮아가지 않는 것은 이 비판, 불만의 의식이 여야, 보수나 진보, 같은 전통적 대립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지 않은 것임을 의미할 수 있지 않겠는가?
눈을 감아도 떠도 2020년 연말을 고통스럽게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모두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풀뿌리를 위한 일에 나서야 할 때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