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 후반 6분, 잉글랜드 문전에서 골키퍼 피터 쉴튼과 공중볼 경합을 벌인 마라도나 선수가 선제 헤딩골을 넣었다. 쉴튼은 신장 185㎝, 마라도나는 165㎝. 더구나 골키퍼는 손을 쓸 수 있어 헤딩슛은 불가능해 보였다. 비디오 판독 결과 마라도나가 손을 쓴 장면이 확인됐다. 세계를 뒤흔든 '신의 손' 사건이다.
'악마의 골'을 넣은 마라도나는 5분 뒤 중앙선부터 수비수 6명을 따돌리고 질주한 끝에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네트를 흔들었다. 당시 외신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골과 가장 추한 골이 동시에 나왔다"고 평했다. 잉글랜드는 게리 리네커가 만회 골을 넣었으나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 아르헨티나는 결승에서 서독을 3대 2로 누르고 FIFA 컵을 차지했다. 대회 5골을 넣은 마라도나는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25일(현지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외신이 전했다. 앞서 지난 3일 두부 외상 후에 출혈이 생겨 뇌수술을 받고, 1주일만인 11일 퇴원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즉각 3일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마라도나는 펠레와 함께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펠레는 '축구 황제'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었지만, 그는 '축구 악동'이라 불렸다. 거침없는 언행과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과 미움이 엇갈렸다.
1960년 10월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3남 4녀의 첫째로 태어났다. 빈민가에서 성장했으나 천부적 축구 재능을 인정받아 16살 때 프로에 데뷔했다. 아르헨티나의 명문 보카 주니어스를 거쳐 FC 바르셀로나, SSC 나폴리, 세비야 FC에서 뛰었다. 마라도나를 영입한 이탈리아 나폴리팀은 1987년 사상 첫 리그 정상에 올랐다. 1989년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 1990년 리그 우승 등 전성기를 보냈다.
현역 은퇴 이후 대체로 불운했다. 약물 복용과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모국의 국가대표팀과 프로팀 감독을 지냈으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취재 기자에게 총을 쏴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축구 팬들은 그의 마법 같은 플레이를 그리워한다. 때론 신(神)으로 추앙한다. 하느님도 어떤 신인가 궁금해 때 이르게 부른 듯하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