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빌가(家)의 테스가 순결의 문제를 던졌다면, 안동김가(家)의 초희는 자유의지의 문제를 던졌다.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초희'가 인물의 비극을 시의 비극으로 옮겨서 시의 언어가 언어의 전사가 되어 언어의 존재 이유를 위해 투쟁하며, 이러한 언어들의 겨룸을 통해서 시와 정치에 대한 성찰을 크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평을 내렸다.
류서재는 고려대 문학 박사과정 이후 문학적 사유의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모교 강단에서 10년 동안 로고스의 보편성과 개인성을 탐구해왔다. '사라진 편지' 이후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파란을 난 치는 내면묘사로 부각한 '석파란', 사대부와 기녀의 사상적 대결을 다룬 황진이 소설 등, 한국 정신문화의 원형을 소설적 주제로 삼아 극적 구성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류서재가 '사라진 편지'를 이번에 복간하는 이유는 허난설헌 소설을 계속 세상에 내놓는 늦은 숙제를 하는 것도 있지만, 지금이 허난설헌을 제대로 이해할 때라고 보기 때문이다. 500년 전의 여자, 허초희는 현재 한국의 MZ세대처럼 자기만의 취미와 특기가 확실하다.
달의 여신 초희는 시집살이의 순교자인가?
초희(1563)는 한국 땅에서 시집간다는 말이 처음 생겨나는 때, 남자 집에서 시집살이를 경험하는 첫 세대로 신사임당(1504)과는 60년 차이가 난다. 조선 중기부터 명나라 친영제를 모방하여 여자가 태어난 집을 떠나면서 남자 족보를 중심으로 한국적 종법의식, 장남, 맏며느리, 선산, 종갓집의 개념이 차차로 생겨나며 페미니즘을 잉태하는 조건을 만든다.
우리는 초희의 유선사를 사려 깊게 살펴보아야한다. 조선에서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 3가지 한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있지만, 초희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녀의 불행이 시적 감수성에 강력하게 개입해있지만, 신선세계라는 시적 사유는 가부장제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초희는 페미니즘보다 훨씬 더 큰 프레임으로 남성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초희는 이 세상을 소풍 나온 언어로 시 속에서 놀고 있다. 초희는 채색난새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은하수를 따먹고 논다. 달나라 궁전 백옥루로부터 조선으로 날아와서 조롱에 갇힌 앵무새처럼 살다가 백옥루로 다시 돌아간 한국의 여신, 초희의 눈물은 맑고 높다.
▲ 소설가 류서재
고려대 문학 박사, 2010년 '사라진 편지' 여성동아장편소설상 데뷔, 2012년 흥선대원군 '석파란' 황금펜영상문학상,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 2015년 '여자의 초상' 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 단편 '한없이 부풀어오르는 말들에 관하여' 아시아문학콩쿠르상 수상.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