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작품보다 작가 全생애로 수여
여성에 장벽 2000년대 들어 비율↑
올해는 서정시인 글릭 16번째 수상
보편적 감성으로 확장·투명성 제시
감염병시대 인류에 위안·치유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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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12월1일 이화여대에서 '스웨덴-한국 노벨 메모리얼 문학 프로그램'이 개최되었다. 노벨문학상의 위상과 그것이 한국문학에 미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스웨덴 발제자와 한국 발제자가 한 사람씩 나서 온라인 실시간으로 진행된 뜻깊은 자리였다. 노벨문학상은 20세기 벽두인 1901년부터 시작되어 올해까지 모두 117명의 수상자에게 주어졌다. 특정 작품보다는 작가의 전(全) 생애에 주어진다는 특성을 지닌 노벨문학상은 시대상황 등 외적 요소도 많이 고려되기로 유명하다. 최초 노벨문학상은 프랑스의 시인 쉴리 프뤼돔이 수상했고, 전쟁이나 특수 상황으로 인해 몇 번의 결락이 있었지만 꾸준히 수상자를 배출하였고 몇 번의 수상 거부라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문학상'에 어울리지 않는 분들 여럿이 수상자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철학자 베르그송이나 러셀, 정치인 처칠, 역사가 몸젠 등이 대표 인물들이다. 하지만 가장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사례는 아마도 2016년 수상자 밥 딜런이었을 것이다. 그는 작가라기보다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 등으로 유명한 가수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랫말에 시적 통찰을 담은 그는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불려왔고, 드디어 그의 노랫말이 예술적 언어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특별히 반전(反戰)과 인권 같은 인류 보편의 의제를 노래 안에 담아낸 것이 결정적 수상 이유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도 여성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았다. 첫 여성 수상자는 스웨덴 아동문학가 라겔뢰프(1909)였다. 그 후 여성작가들은 수상자 가운데 10퍼센트 미만 비율을 구성하다가 2000년대 들어 그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도리스 레싱(2007), 루마니아의 헤르타 뮐러(2009), 캐나다의 앨리스 먼로(2013), 벨라루스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015),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2018)에 이어 올해 수상자인 루이스 글릭은 역대 열여섯 번째 여성 수상자다. 물론 루이스 글릭(Louise Gluck)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시인이다. 국내에 번역본 자체가 아직 없다. 글릭은 1943년 뉴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자랐다. 25세에 첫 시집 '맏이'(1968)를 펴냈는데 인간의 억압과 고통의 문제를 인상적 이미지에 담아냈다고 평가받았다. 전통 운율과 구어를 활용한 작법에도 호평이 이어졌다. 그리고 '습지의 집', '내림차순', '아킬레우스의 승리', '아라라트' 등의 시집을 연달아 내면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92년에 나온 '야생 붓꽃'에서는 뉴잉글랜드 정원을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식물들로 하여금 자기 목소리를 발화하게끔 함으로써 그는 서정시인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된다. 글릭은 이 서정적인 시집으로 199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2004년에는 9·11 테러를 다룬 장시 '10월'을 펴냄으로써 인류의 고통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는 모습까지 보여주게 된다.

스웨덴 한림원은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목소리로 개별 존재자를 보편적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글릭은 그동안 노벨문학상이 '백인-남성-유럽인-소설가'라는 서구의 시선에 의해 주로 수상자가 선정되어 왔는데 자신은 비록 백인이지만 '여성-비(非)유럽인-시인'이라서 뜻밖이라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의 시를 원문으로 서투르게 읽어보니 그 세계는 서정적 자아가 빠지기 쉬운 사사로운 감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편적인 존재자들의 목소리를 다양한 사물들로부터 길어올리는 서정의 확장성과 투명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 가파른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서정시가 커다란 위안과 치유의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한림원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서정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어쨌든 노벨문학상은 첫 수상자와 올해 수상자가 모두 시인이었다. 소수의 문학 장르였고, 그 특유의 모호함으로 시대적 명제로부터 비껴난 자리에 있곤 했지만 이제 세계의 시선은 서정시를 향하고 있다. 노벨문학상에서도 한국 시인들의 쾌거를 마음 깊이 빌어 마지않는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