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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삼겹살' 김형곤은 1980년대 '유머일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의 풍자 개그로 대중스타가 됐다. 2006년 3월 화장실에서 쓰러져 46세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의료계는 무리한 운동으로 120㎏이던 체중을 90㎏까지 감량한 게 화를 부른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스무 살 되던 해 징집영장이 나오자 살을 찌워 군(軍)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한동안 죽기 살기로 먹어댔다. 평소에도 과체중이던 몸이 110㎏을 웃도는 뚱보가 됐다. 역시나 신체검사에서 바라던 면제 처분을 받았다. 돼지처럼 먹고 마시고, 잠만 잔 보람이 있었다. 사람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던가.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판정관의 면제사유는 엉뚱한 데 있었다. 평발 때문이란다. 그가 TV 대담 프로그램에서 밝힌 유머러스한 군 면제 사연이다.

비만과 평발(편평족), 시력 관련 병역판정 신체검사 기준이 완화됐다. 뱃살이 파도를 치고, 돋보기를 쓰는 지독한 근시라도 군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평발도 완전무장을 하고 구보를 뛰어야 한다. 호랑이에 독수리, 코브라 뱀으로 온몸을 도배했어도 현역 판정을 받게 됐다. 국방부가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 규칙'을 입법 예고했다. 진단 및 치료 기술의 발달 등 의료환경 변화에 따라 신체등급의 판정 기준을 개선해 병역 판정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높였다는 게 국방부 설명이다.

입영 문턱을 확 낮춘 찐 사정은 자원부족 때문이다. 지금 기준은 2015년 현역병 입영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강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잣대로는 적정 병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예측에 따라 5년만에 2014년 이전 기준으로 되돌리게 됐다.

당장 군 전력이 약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관심 병사만 늘게 생겼다고 걱정한다. 예비 당사자들은 불만에, 실망스런 반응이다. '이참에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해 직업군인들이 병역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 평등 말만 하지 말고 여성들도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불과 수년 전, 35만명이던 징병대상 연령자가 2022년 이후 22만명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외국 용병이라도 수입해야 할 처지다. 저출산이 국방을 흔들고 있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