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많아 거의 외부에서 머물러
기본요소 갖춘 주거 제공 효과적
원격근무·여가 즐기는 생활 가능
'영끌' 내집마련보다 여유 더 많아
몇 년 전에는 한 작가가 외국의 유명한 시인이 호텔 방에서 살다가 죽은 뒤에 그 방을 '시인의 방'으로 이름 붙여 문화상품으로 만든 사례를 들면서 방을 제공해줄 호텔을 찾기도 했다. 그 시인은 월세 만기가 되어 집을 빼라고 하여 호텔을 홍보해주고 살 방법을 찾고자 한 궁여지책이었지만, 여론의 눈총을 받았다. 그러나 부자들만을 위한 호텔이 아니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거주지로 유명해진 호텔도 많다. 뉴욕 맨해튼의 첼시호텔은 예술가들의 거주지로 유명해졌다. 값비싼 임대료와 작업실 부족으로 재능을 펼치기 어려운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첼시호텔은 20세기 미국의 문화예술을 견인한 근원지로 등장했다. 잭슨 폴락, 딜런 토마스 같은 개성파 예술가들의 활동 무대, 밥 딜런이 새로운 곡을 쓴 방을 찾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호텔이 되었다. 첼시호텔에 거주했던 가난한 예술가들은 그림을 교환하거나 재능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숙박비를 지불했다고 한다.
이렇듯 호텔을 집같이 사는 것은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주거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청년들이 값싼 임대료를 내고 호텔 주거를 시작하자, 갑자기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 '호텔 거지'를 양산한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아무리 정부의 주거 정책이 잘못돼서 집값이 올랐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주거정책을 반사적으로 비판하고 비꼬는 한계를 넘었다. 정부가 청년 주거지원 정책의 하나로 호텔을 개조해 임대주택을 공급한 것이기 때문에 호텔 주거는 아니고, 호텔형 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외국 관광객이 사라진 상태에서 경영이 어려운 호텔을 인수하여 주택으로 전환한 것은 오히려 신속한 행정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할 수 있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7만∼35만원 수준으로 대로변에 있는 4~5평 방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일부에서는 주방과 세탁실 등 집에 필요한 요소가 없다고 비판을 하지만, 이는 호텔 주거의 장점을 모르는 소리이다. 호텔 주거는 비즈니스맨 등 사회 활동이 활발한 사람들의 주거 형태이다. 주방과 세탁실과 같은 개인 공간을 제거하고 공유 공간으로 제공하는 것이 공간 활용에 더 좋다. 개인에게 꼭 필요한 실내 공간을 더 넓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청년들은 활동이 많아 집보다는 외부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도심에 기본적인 요소만을 갖춘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주거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원격근무를 하는 기업들과 직장인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주거 문화가 등장하고 있다. 지역의 작은 민박집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달 살면서 일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주거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호텔이 원격근무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낮에는 일하고 일과 후에는 관광지로 퇴근(?)하여 여가를 즐기는 생활이 기능해졌다. '영끌' 내집 마련에 나서는 청년보다 더 많은 활동과 경험을 쌓으며 인생의 여유를 찾는 청년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