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창궐에 가족 장례로만 치러
줄폐업·개학연기 등 모든일상 고립
이런 지경에도 '선진 국민의식' 희망
절제·양보·배려 확산… 자랑스러워
'아는 형님'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가 눈시울을 붉히며 한 말입니다. 연로하신 아버지가 줄을 서서 기다려 방역물품을 사고는 바깥출입도 하지 않은 채 아껴뒀다가 아들에게 줬다는 건데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여든 되신 어르신을 만났는데, '코로나19' 안부를 묻고는 당신도 매주 약국 앞에서 줄을 서서 마스크 두 장을 산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헤어질 때 제게 마스크 몇 장을 건네주셨습니다. 어찌나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 교차하던지…. 마스크가 생기니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약국 앞에 줄을 서 기다리면서 지금 내가 뭐하는 거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요. 기다리는 게 정말 지루했지만 늦게 와서 못 사고 돌아서는 사람보다는 행복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지난 봄, 뇌경색으로 투병 중이던 장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때 장인어른도 충격을 받으셨으니 무척 당황했지요. 모두 저만 바라보았습니다. 7남매 중 하나뿐인 처남이 막내라서 누나와 매형들이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했는데 제가 맏사위였기 때문이지요. 각자 가족에게만 부음을 알리자고 했습니다. 처제와 동서 중엔 가까운 친구나 모임을 갖는 사람들에겐 알려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지만, 토론 끝에 제 의견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가족끼리 장례를 마쳤는데, 왜 연락도 하지 않았느냐고 핀잔을 듣기도 했으나 "섭섭하지만 잘했다"란 말이 더 많았지요.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 신랑·신부가 신혼여행을 못 가거나 아예 결혼식을 미루는 사람들이 속출했잖습니까. 부음을 알리는 것 자체가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추석 명절에도 생전 처음 고향을 가지 못했지요. 어른들은 물론 자식들과 손주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나들이를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 소주잔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미처 몰랐지요. 아들 내외와 손주들과 함께 지내는 소소한 일상 또한 얼마나 소중한 삶의 활력소인지, 감사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생기더군요. 건강하다는 게, 일터가 있다는 게, 이렇게 소중한 것인지 예전엔 정말 몰랐지요. 집에서 '삼식(三食)이'로 지내며 책은 많이 읽었지만 답답했습니다. 마스크 사러 가는 게 기다려질 정도였지요.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식당이 줄지어 휴·폐업하고, 대중교통 이용률도 크게 줄었습니다. 특히 여행업계는 완전 초상집 분위기이고 전통시장이나 백화점 등도 매출이 크게 떨어져 고전을 면치 못했지요. 실업자가 사상 최대로 늘어나고, 입학과 개학이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참아야 할 때 절제하고 양보하고 배려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지요.
이런 고통을 참고 살다 죽으면 사리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진담처럼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보았지요. 의료진과 소방관, 군의관과 간호 장교들이 대구로 달려가고, 수많은 사람이 자원봉사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기업인은 물론, 많은 국민이 성금과 물품을 기증했지요. 월급의 일부를 기탁한 공무원들과 재난지원금을 기부한 사람도 많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우려는 우리의 미덕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한 것이지요. '사회적 거리두기'도 잘 지켜졌고 사재기도 없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선진 시민의식을 보여준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요.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새삼 다시 한 번 깨달았지요. 코로나19로 힘들었지만, 이렇듯 얻은 것도 많습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국민 저력을 확인한 건 그 어떠한 자산보다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래도 코로나19가 빨리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홍승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