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진열장에 트로피 쌓일수록 여론 냉랭
윤석열 삭제·친정권 공수처장 '권력 과용'
文정권, 노무현 길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다
신기한 건 민심이다. 정권의 진열장에 승리의 트로피가 쌓여갈수록 여론이 등을 돌린다. 정권을 응시하는 대중의 시선이 서늘하다. 대통령 지지율은 2주째 바닥에서 바닥을 향한다. 정권 지지대열에서 이탈하는 중도층 기세가 심상치 않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정권 내내 연전연패한 부동산정책에 분노한 민심은 퇴임 후 대통령 사저를 6평으로 제한해달라는 국민청원을 올릴 정도로 악화됐다. 윤석열 찍어내기가 기름을 부었다. 법은 선택적으로 작동하고 절차는 편파적으로 진행된다. 정도와 상식을 벗어난 정권의 집단 이지메가 빚어낸 막장 드라마. 대중은 몰입하며 악역에 눈을 부라린다.
정권의 자부심이던 K방역도 부실한 실체를 드러냈다. 병상이 씨가 말랐고 백신 확보는 긴가민가하다. 코로나 추경 66조8천억원 중 진짜 코로나에 집중한 예산은 없었다. 전문가 보다 정권의 운(運)을 믿은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엔 신천지교회도 광화문 보수집회도 없다. 겨울 대유행을 일으킨 '살인자'는 누구일까. '5·18 정신 국정화(國定化)'도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결사반대한 정권이 '5·18'을 신성불가침으로 만들어, 자유의 절대적인 가치를 상대적으로 격하시켰다.
정권의 실력에 실망한 여론이 정권의 폭주와 가벼움에 놀라고 정권의 자유민주주의를 의심하면서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형국이다. 놀라운 건 정권의 여유다. 여당 의원들은 윤석열을 대권주자 1위로 만든 여론이 윤석열을 삭제하는 순간 흩어질 것이라 장담한다. 추미애는 윤석열 사태에 중립적으로 침묵한 법관들에게 "아쉽다"고 역정을 내고, 대통령은 진선미의 임대주택 구설을 반복한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견고한 문재인 팬덤이다. 문재인 팬덤은 정권의 혁명수비대이자 장기집권의 전위들이다. 이들이 건재하는 한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는 여론은 결정적인 순간에 포획하면 그만이다. 지리멸렬한 제1야당 국민의힘도 정권의 힘이다. 정권을 의심하는 여론의 폭등은 부담이지만, 여론이 고일 야당은 금가고 이가 빠졌다. 정부를 비난하는 여론은 고일 곳도 흐를 곳도 없이 말라버릴 것이다. 정권의 오늘만 보는 시각이다.
4년 전 박근혜를 탄핵시킨 주역은 민심이었다. 세월호에 분노한 민심이 최순실 국정농단에 광화문에서 폭발했다. 민심이 광화문에서 범람하자 견고했던 박근혜 팬덤은 침묵하고 흩어졌다. 역풍을 우려해 탄핵시위 동참을 망설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뒤늦게 합류하고서도 정권을 접수했다. 120여석에 불과한 폐족 정당에게 굴러온 행운이다. 독점할 수 없어서 행운이다. 다른 시기 다른 정당에게도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국민은 빵 달라 밥 달라 광장에 모인 적이 없다. 독재타도를 위해 민주화를 위해 국정농단 탄핵을 위해 모인다. 배고픈 건 참아도 자유와 민주와 정의의 결핍엔 목숨을 걸고 일어난다. 문재인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을 보는 순간 재현될 일이다. 지금 민주주의를 '문주주의'로 읽는 여론이 늘어나고, 진보 지식인들은 여론의 전방 곳곳에서 정권 비판의 참호를 파고 있다. 최장집은 정권의 전체주의를 걱정하고, 진중권은 진보의 몰락을 전망하고, 최진석은 '나는 5·18을 왜곡한다'며 저항한다.
노무현은 원칙 있는 패배가 원칙 없는 승리보다 낫다고 했다. 하지만 노무현의 계승자들은 윤석열을 삭제하려 권력을 낭비하고, 친정권 공수처장을 세우려 권력을 과용했다. 절대권력으로 획득한 전리품이 노무현이 경멸한 '원칙 없는 승리'다.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의 길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고, 요동치는 민심은 가볍지 않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