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Talk_20201221_172321138111
불법 보조금을 근절하겠다는 취지에서 단통법이 시행된지 6년 차를 맞았지만 이른바 '성지' 문화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사진은 수원역 지하상가에서 휴대전화 판매를 하는 한 매장의 모습. 2020.12.21 /이여진기자 aftershock@kyeongin.com

신원확인·녹취 막으며 단속 회피
94만원짜리 모델을 10만원에 판매
이윤 적지만 단골 지키려 고육책
업자 "내달 갤S21 출시땐 더 심화"

"아이폰12 미니요? 공지된 가격(10만원)에 가능하신데, 혹시 녹음하고 계신 건 아니죠?"

21일 수원역 지하상가. 인터넷에서 이른바 '성지'(휴대폰을 특별히 싸게 파는 매장)라고 소개받은 한 매장에 들어가자 점원은 '누구와 통화했느냐'부터 물었다.

이어 주민등록증과 사원증으로 신분을 확인한 뒤 휴대폰 등 녹취 장비를 모두 꺼야 하고 휴대폰 가격은 절대 소리 내 말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정상 가격 94만6천원인 '아이폰12 미니 64G'는 이곳에서 불과 10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공시지원금 39만원에 불법 보조금 39만원이 더해져서였다.

최신 모델인 아이폰12 미니 248G와 126G는 재고가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근처 다른 매장도 '얼마까지 보고 왔느냐'부터 물은 뒤 '성지' 가격에 맞춰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아이폰12 미니를 10만원에 팔면 점포에 남는 돈은 불과 2만~3만원이지만, 수년간 불법 보조금으로 확보한 단골을 신흥 업자에게 뺏기지 않으려는 고육책이라고 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이 시행된 지 6년이 넘었지만 불법 보조금을 지급해 휴대폰을 싸게 파는 업자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7월 방통위가 단통법 위반 혐의로 이동통신 3사에 과징금 512억원을 부과했음에도 이들은 녹취를 제한하고 신원 확인을 엄격히 하는 등으로 단속을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다.

'호갱'(같은 상품을 비싸게 사는 고객)이 되고 싶지 않은 10~20대 사이에서 이미 SNS로 '성지'를 공유하는 문화가 굳건히 자리 잡았기 때문에 영업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게 업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로 1천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 '좌표OO'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실시간으로 전국 불법 보조금 지급 매장의 휴대폰 시세표가 올라온다. 젊은 층은 이 시세표를 기준으로 유명 휴대폰 단지를 방문해 불법 보조금 액수를 협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역 지하상가에도 이른바 '성지'는 단 2곳뿐이지만 대부분의 매장이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한 업자는 "성지는 새로 장사를 시작한 사람들이라 단속 위험을 감수하고 '좌표'를 공개할 뿐, 대부분의 매장이 불법 보조금을 지급해 단골을 관리한다"며 "다음달 갤럭시 S21이 출시되면 보조금 경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이동통신사가 불법 보조금 지급을 자율적으로 자제하라고 권고하는 한편, 폰파라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다"며 "지난 10월 전국 현장 점검을 한 차례 실시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단속도 부담스러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여진기자 aftershoc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