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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국자 2주 격리 조치로 올해 산타클로스는 내년 1월9일에나 온다는 유머에 어른들은 웃지만, 어린이들은 정색한다. 지난달부터 세계 각국에서 산타의 썰매 운행과 선물 배송이 가능할지 묻는 어린이들의 민원이 쏟아졌다. 절박한 민원에 어른들의 답변도 진지하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산타클로스는 국제 통행허가증을 갖고 있다"며 썰매 운행을 약속했고,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은 "북극에 가서 산타에게 직접 백신 주사를 놓았다"며 선물 배송을 장담했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는 올해도 산타 위치추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분장한 산타와 어린이가 만나는 산타클로스 이벤트도 코로나19 버전으로 변형됐다. 오프라인 행사에선 산타는 마스크를 쓴 채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어린이와 만나야 한다. 이도 불안한 부모들은 온라인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에 산타를 초대한다니 코로나 이후에도 번창할 사업일 듯싶다. 모두 크리스마스 동심을 지켜주기 위한 어른들의 눈물겨운 노력들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크리스마스는 훈훈한 사연 한자락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삭막하다. 어제부터 시행된 수도권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으로 성탄절 거리들이 텅 비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부터는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전국으로 확대된다. 연말연시를 전후한 해넘이, 해돋이 명소들도 폐쇄됐다.

한 해의 수고를 위로하며 공동체의 연대를 다지던 인간관계들이 모두 분리된 채 사람들은 집 안에 갇혔다. 지난달부터 성탄 대목을 준비했던 자영업자들은 줄줄이 폐업안내문을 내걸고 있다. 산타는 올테지만 썰매에 선물을 실어야 할 부모들의 지갑은 썰렁하다.

이번 크리스마스 최고의 선물은 누가 뭐래도 코로나 백신이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풍족하게 확보한 국가들은 이미 국민들에게 속속 성탄절 백신 선물을 배달 중이다. 성탄절 만찬을 즐기는 행복한 가족들을 창밖에서 훔쳐보는 성냥팔이 소녀가 된 기분이다.

1년 내내 정부가 시키는 대로 코로나와 맞서 온 착한 국민들이다. 그런 국민을 정부는 K방역의 주역이라고 떠받들었다. 착한 순서로 따지면 산타의 백신 선물을 제일 먼저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데 한국 산타의 썰매엔 아무 것도 없다. 괜히 억울하고 눈물 나는 코로나 크리스마스 풍경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