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강원 고성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속초·강릉·동해시와 고성·인제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피해가 컸다. 산불 발화지점은 전신주 개폐기 전선으로 추정됐다. 이처럼 화재 발생 가능성이 높은 노후·불량 배전설비가 경기도내에 산재하고 있지만 실태 파악도 안 되는 실정이다. 고성 산불이 인재라는 지적이 제기됐는데도 한국전력이 노후·불량 설비 실태 파악과 교체에 손을 놓고 있어서다.

전국에 설치된 전신주는 지난해 기준으로 220만1천84개로 집계됐다. 이 중 120만개가 도내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노후·불량 배전설비에 따른 긴급복구 공사도 많았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경기도전기지부에 따르면 지난 10~11월 경기도내 변압기, COS(컷아웃스위치), 전선 단선 등 긴급복구 공사는 402건으로 월평균 200건을 넘겼다. 변압기 고장이 143건으로 가장 많았고 전선 단선이 100건, COS 고장 80건, 기타 79건 순이었다.

전선의 수명은 외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햇빛이나 수분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30년까지도 사용 가능하지만 악천후 등 환경에 따라 10년 정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자주 발생할 경우 노후·불량 배전을 더 악화할 수 있어 유지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전신주 전선에 대한 교체 및 수리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전선에 대해 전면적인 실태조사가 뒤따라야 한다. 특히 노후·불량 배전설비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제작경과연수를 평가항목에서 누락시키고 양호한 것으로 둔갑시키는 사례까지 감사원에 적발되기도 했다.

도내에는 철선이 녹슬고 끊어질 듯 위태롭게 연결된 전봇대를 쉽게 볼 수 있다. 전선에 나뭇가지가 닿아 녹아내리기도 한다. 철선이 끊어져 전선과 닿으면 곧바로 열을 내면서 불꽃이 발생하기 때문에 대형 화재로 벌질 수 있어 교체 공사가 시급하다. 특히 인구 밀집 지역은 화재가 나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공장 밀집지역, 전통시장, 상가 등 노후·불량 배전설비를 시급히 교체해야 하는 곳도 많다. 한전은 '교체를 건의해도 10%만 받아들여질 뿐 사고가 나야 교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관련자의 지적에 주목해야 한다. 외부의 경고가 잇따르는데도 이를 무시하다 인재(人災)를 부른 사례는 수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