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다간 신발 신을 일 없어질지도
일주일에 두번 노트북앞에서 수업
열심히 사 모은 건 마스크 뿐인데
바깥 출입 안해 마스크도 그대로
집안정리에 유난히 애를 쓰게 돼

"할머니가 S전자 주식을 5만6천원에 샀는데, 그게 8만원이 됐어. 장난감 뭐 사줄까?", "주식이 뭔데요?", "그런 게 있어." 뭐라도 한 줄 써보려고 식탁에 앉았다가 둘의 통화가 하도 기막혀 내가 끼어들었다. "애한테 지금 뭐라는 거야?" 엄마가 까르르 웃는다. "야! 내가 할 말이 얼마나 없으면 이러겠냐? 얘가 하루에 나한테 전화를 몇 번이나 거는 줄 알기나 해?" 하기는 귀엽다는 말도, 밥 잘 먹으라는 말도, 한두 번이지. 손녀에게 할 말이 동난 할머니도 죽을 지경인 거다. 아무리 그래도 주식 이야기라니. 대충 전화를 끊게 하니 아이는 이제 큰이모, 작은이모에게 또 줄줄이 전화를 건다.
하도 조심하라고들 하니 마트도 놀이터도 나가지 않는다. 밤이 되어 아파트 단지가 고요해지고서야 잠깐 킥보드 끌고 산책을 나갔는데 요 며칠은 미세먼지 농도가 너무 심해져 그나마도 하지 못했다. 정말 이러다간 신발 신을 일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세상을 사는 방식이 다 바뀌었다. 모든 강연은 이제 온라인으로 바뀌어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줌 프로그램을 켜고 노트북 앞에서 수업을 한다. 강의하는 나도, 배우는 분들도 어색해 하지 않는다. 차비 들이고 시간 들여 오가지 않는 일이 훨씬 효율적으로 느껴져, 코로나 시국이 다 끝나도 아마 나는 계속 이 방식을 고수하게 될 것 같다. 수업이 끝나도 우리는 노트북을 끄지 않고 각자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와 두런두런 뒷이야기들을 나누며 바나나를 까먹고 오징어를 씹는다. 그래서 어떤 수업은 아예 늦은 밤으로 미루었다. "수업하는데 자꾸 누가 방해하는 것도 싫고, 끝나고 이렇게 맥주 한 잔씩 하는 게 더 좋은데요?" 우리는 모두 동의했다.
지난 1년 동안 립스틱을 한 번도 사지 않았고, 외투는 두어 벌 샀지만 입을 일이 없어 곧 후회했다. 구두를 선물 받았지만 정말 딱 세 번 신었다. 삼겹살은 절대 집에서 구워 먹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그런 규칙 따위 이제는 없다. 삼겹살은 물론이고 깐쇼새우까지도 이제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열심히 사 모은 건 마스크뿐인데, 신규 확진자가 1천명을 넘은 이후로는 바깥출입을 아예 하지 않아 마스크도 그대로다. 경조사 잘 챙긴다는 말을 칭찬으로 알고 살았지만 다 전생 같은 이야기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집안 정리에 유난히 애를 쓰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여섯 살 아이까지도 장난감을 늘어놓다가 화들짝 놀라 내 눈치를 본다. 그 때문에 우리 집은 아이 있는 집 같지 않게 반들반들하다.
코로나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1년 사이 우리는 변하고 변해, 못 만나고 사는 삶을 슬퍼하게 될 것 같지 않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삶을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개발하고 내어놓아서, 사실 나는 지금도 불편한 것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허전하고 쓸쓸한 기분 따위야 곧 익숙해질 테고, 우리는 정말 전생을 더듬듯 굳이 밖으로 나돌던 오지랖 넓던 시절을 웃으며 이야기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어느새 다 잊고, 어느 먼 옛날 비행기를 타고 여름섬과 겨울나라를 떠돌던 날들을 전설처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오늘 새벽에는 정말이지 소리라도 빽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미세먼지만이라도 좀 꺼져 줘!" 어젯밤 만든 생선조림 냄새가 제대로 빠지지 않은 것 같아 창문을 열고 싶었지만 스마트폰의 미세먼지 앱에는 악마 모양 이모티콘과 함께 '상당히 나쁨'이라는 글자가 써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참겠는데, 이게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은 정말이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