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해병대는 겨우내 굶은 데다 지뢰까지 밟아 한쪽 다리 발굽이 날아간 죽기 직전의 소를 구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소는 치료를 끝내고 이듬해엔 제주도에서 건너온 '남한 신부'를 맞아 7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평화의 소'로 이름 붙여진 이 수소와 암소가 낳은 송아지들은 남북 평화의 상징이 돼 김포는 물론 어미의 고향인 제주도까지 건너가 '통일의 씨앗'을 뿌렸다.
경인일보는 2017년 '평화의 소 20년 남북관계 돌파구 찾자'란 제목의 기획기사를 7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북에서 떠내려온 평화의 소 핏줄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남북 평화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자는 취지의 보도였다. 김포는 물론 제주까지 오가며 발품을 판 끝에 김포의 한 농장에서 평화의 소 '손주' 격인 암소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신축년(辛丑年) 새해 아침, 회사 노트북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그 평화의 소가 떠올랐다. 그간 남북 관계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타듯 큰 부침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남북 평화의 희망은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이제는 그 희망의 염원마저도 온 세상을 뒤덮은 코로나19 공포 속에서 잊혀진 것 같다.
희망의 빛을 향해 우직하게 전진하는 평화의 소. 남북 모두가 그 기운을 받아 신축년 한해 다시 평화를 노래하는 상상을 해본다.
/김명호 인천본사 정치부 차장 boq79@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