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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인천본사 정치부 차장
정축년(丁丑年)이 시작되던 지난 1997년 1월, 한강하구 중립수역에 위치한 조그만 무인도 김포 유도(留島)에서 대한민국 해병대까지 투입된 소(牛) 구출 작전이 펼쳐졌다. 앞서 1996년 여름 북에서 홍수로 휩쓸려 떠내려와 지내고 있는 소를 뒤늦게 구해내기 위해 어렵사리 UN 정전위원회로부터 상륙허가를 얻어 진행된 작전이었다.

우리 해병대는 겨우내 굶은 데다 지뢰까지 밟아 한쪽 다리 발굽이 날아간 죽기 직전의 소를 구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소는 치료를 끝내고 이듬해엔 제주도에서 건너온 '남한 신부'를 맞아 7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평화의 소'로 이름 붙여진 이 수소와 암소가 낳은 송아지들은 남북 평화의 상징이 돼 김포는 물론 어미의 고향인 제주도까지 건너가 '통일의 씨앗'을 뿌렸다.

경인일보는 2017년 '평화의 소 20년 남북관계 돌파구 찾자'란 제목의 기획기사를 7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북에서 떠내려온 평화의 소 핏줄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남북 평화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자는 취지의 보도였다. 김포는 물론 제주까지 오가며 발품을 판 끝에 김포의 한 농장에서 평화의 소 '손주' 격인 암소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신축년(辛丑年) 새해 아침, 회사 노트북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그 평화의 소가 떠올랐다. 그간 남북 관계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타듯 큰 부침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남북 평화의 희망은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이제는 그 희망의 염원마저도 온 세상을 뒤덮은 코로나19 공포 속에서 잊혀진 것 같다.

희망의 빛을 향해 우직하게 전진하는 평화의 소. 남북 모두가 그 기운을 받아 신축년 한해 다시 평화를 노래하는 상상을 해본다.

/김명호 인천본사 정치부 차장 boq79@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