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름이 그렇지 않을땐 고개 돌려
모든 변화속 변치않는 진실 있듯이
예측 못한 변화 이해하고 타협해야
이번 새해만큼은 특별한 해 됐으면
다석 유영모라는 현대 철학자가 있어 신묘한 사상을 펼쳐 놓고 가셨으니 그것을 가리켜 '다석일지'라 하고, 이 '말씀'을 경전 삼아 주석을 붙인 이가 있으시니 그분은 김흥호라는 분이며 그 책이 '다석일지 공부' 일곱 권이다.
예부터 예수가 바울 없이 오늘에 온전히 전해질 수 없었을 테요, 공자가 자공 없이 가르침을 제대로 전할 수 없었을 테니, 오늘에도 그와 같은 전도가 있다면 바로 유영모와 김흥호 같은 관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세상의 좋은 가르침은 항상 두 가지 부면을 포괄하는 법이다. 하나는 자기 공부요, 다른 하나는 세상 공부일 테니, 이 두 가지는 완성을 추구하는 사상에서는 서로 불가분리 떨어질 수 없어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부단히, 서로를 지향함을 볼 수 있다.
1955년 4월26일부터 이듬해 같은 날까지를 죽음 공부를 하기로 죽음을 살기로 작정한 유영모는 하루하루의 '일생'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의 시문으로 남겨 놓았다. 물론 일지는 그후로도 계속되지만 필자 생각에, 그렇다면 그 '일지'는 미리 정해 놓은 죽음의 날을 향해갈수록 치열하고 뜨거운 것들로 가득하리라 했다.
이 다석의 귀한 말씀이 후세대에 전해지지 못할 것을 염려한 김흥호 선생이 칠십대 중반의 나이에 이 '일지'의 풀이 작업을 1만2천매 원고로 뜨거운 한여름에 마쳐 놓았다 한다. 과연 세상이란 신비로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
여기 이런 말이 있다. 1956년 2월7일 다석의 기록에 대한 풀이다.
"좋은 나라는 먹을 것이 넉넉하고 문화가 풍성하여야 한다.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 밥과 말씀이 다 있어야 좋은 나라다. 사람의 입이 많으면 먹이는 일이 가장 큰일이다. 밥을 먹여 놓으면 매번 거짓말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더운밥 먹고 식은 말 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다. 밥 먹고는 일하고 문화를 창조하여 참말을 하여야 하는데, 일도 안하고 문화도 창조 안 하고 놀며 거짓말만 하니 큰 문제다. 나라고 하는 것이 이미 거짓말이다. 나는 내가 아니다. 하나님만이 나다. 나는 저다. 옛날부터 백성들을 제대로 먹인 일이 없다. 정신도 나갔고 육체도 쓰러진다. 먹이고 참말 하여야 복지국가다. 말씀이 있고 먹이가 있어야 하나님 나라다."
필자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다석도 그런 의미의 신자는 아니었던 듯하다. 또 필자는 한국인이 거짓말만 하는 사람들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말이든 새겨들어야 하리라.
세상은 참으로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뭉쳐 있는 것 같으면 흩어지고 서 있는 것 같으면 움직이며 올라 서 있는 것처럼 보이던 것이 아래를 향해 간다.
새로워 보였던 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아 보일 때 사람들은 적잖이 실망하게 된다. 올바르게 보였던 것이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도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그렇다 해서 사람들은 과거의 것이 다시금 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는 바라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
과연 새해를 맞이하는 이 나라는 어떤 상태에 있는 걸까? 진정한 위기는 코로나19가 1천명을 넘어섰다는 데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이 전염병조차 이리 끌어다 붙이고 저리 끌어다 붙이는, 명분과 빌미의 투쟁욕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함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변화하여 성하던 것이 쇠하고 건강하던 것이 병들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왕은 왕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백성들은 백성다워야 한다.
모든 변화의 이면에 변치 않는 진실이 있음을 알고 또 변하지 않음 위로 예기치 못한 변화가 박두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고 환대할 수도 있으리라. 이번의 새해만은 늘 오는 새해가 아니라 특별한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