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입까지 왔다 / 입 속에 꽃이 피었다면 / 그건 말랑말랑한 혀의 품성 덕분이겠지 / 붉은색이 더 붉어진다면 / 입 속 어딘가 홍등 심지를 올리는 기계가 있겠다 / 작년의 꽃씨와 또 그 전 해에 묻은 꽃씨들이 / 때론 썩고 때론 싹 트면서 / 생긴 꽃밭의 소슬한 면적 때문에 / 혀가 혀 위에, 그 밑에 다시 혀가 뒤엉킨 / 화류항(花柳巷)의 질투는 번지는 거지 / 베체트병도 꽃의 언어가 우울해지면서 시작되었어 / 입 속의 잎을 따서 끼니 끓이는 원경(遠景)도 / 내 입 속에서 꾸미는 일, / 혀를 만든 이가 / 강철 꽃잎을 사용했다면 / 혀는 수백 번 꽃의 그늘에서 수런거리지만 / 꽃에게도 혀를 닮은 벌레가 있어 / 암술과 수술이 근심하며 독대(獨對)하는 거라지 / 짐승의 몸을 빌리는 꽃의 노래는 힘들어 / 꽃을 완성해야 하는 혀의 노래도 힘들어
송재학(1955~)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우리는 말로 살고 말로 죽는다. 그만큼 말은 각자 살아 있음을 서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거기에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일상성 속에서 입은 말을 담고 있는 무한한 그릇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사람에게 꽃과 어울리는 것이 있다면 검은 입속에 혀가 아닐까. 각자 검은 속내를 감추고 있지만 입을 여는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혀 꽃'이 피어나지 않던가. 따라서 '입 속에 꽃이 피었다면 그건 말랑말랑한 혀의 품성 덕분이'가 되는 것, 서로의 만남으로 즐거움이 배가 된다면 혀의 '붉은색이 더 붉어진다'는 것으로 꽃이 되고 꽃밭이 되는 것. 그것은 마치 '입 속 어딘가 홍등 심지를 올리는 기계가' 작동하는 것처럼. '혀가 혀 위에, 그 밑에 다시 혀가 뒤엉킨' 상태로 마주 보게 되는 것은 '내 입속의 말이라는 잎새를 따서' 건네는데 '내 입 속을 꾸미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오늘도 말을 하고 살아가는 당신의 '혀는 수백 번 꽃의 그늘에서 수런거리면서' 피어나는 것이니. 그 아름다운 입으로 '짐승의 노래'를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