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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저녁 늦게까지 과음한 속은 숙취로 거북하다. 잦은 설사로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들끓는 속 쓰림에 자진 토를 한다. 해장국을 먹을 수 있는 정도라면 다행한 일이다. 아침·점심을 거르고 오후 서너 시쯤 반상 앞에 앉았으나 서너 숟가락에 그치고 만다. 위장이 다시 요동치면서 음식을 자꾸 밀어낸다. 20대 초반부터 40년 가까이 술과 함께 지냈으나 숙취로 인한 괴로움은 어찌해볼 방도를 찾지 못했다.

아점 무렵, 쓰린 속을 달래볼 요량으로 찾아간 중화식당에서 어쩌다 해장술을 마주한 애주가를 보게 된다. 구석 자리에 똬리를 틀고 홀로 앉은 50대 사나이는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 벌써 두 잔째를 들이켰다. 단무지와 춘장을 찍은 흰색 양파를 집어 든다. 드디어 자장면이 나오고, 사내는 두꺼비 한 마리를 거뜬하게 해치웠다. 감히 넘볼 수 없는 고수의 위엄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전남 순천시장이 전국 처음으로 낮술을 금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4일부터 17일까지 2주간 거리두기를 연장하면서다. 식당에서는 오전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류판매를 할 수 없다. 주·야간 상시 점검반을 편성해 지도·단속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위반하면 무관용을 원칙으로 형사 고발과 강력한 행정조치를 하겠다고 한다.

국민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더 커지게 생겼다고 걱정한다. '낮술 환영'은 언감생심이다. 반면 동감한다는 네티즌도 있다.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다 같이 노력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거다. 이참에 낮부터 술에 취하는 잘못된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한다.

'승무'와 '지조론'을 남긴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은 초인적인 애주가였다. 술과 관련된 숱한 일화를 남겼고, 김삿갓·황진이·변영로와 더불어 4대 호주가(豪酒家)로 꼽힌다. 시인은 술을 말하면서 외주(畏酒)를 낮은 단계로, 낙주(樂酒,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를 주성(酒聖)의 경지로 평했다.

시인은 마흔여섯에 이승과 작별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오랜 기간 병마와 싸웠다고 한다. 시인은 주도의 마지막 18단계를 폐주(廢酒)라 했다. 술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떠난 사람이다. 신축년 새해, 낮술 금지령을 핑계 삼아 금주(禁酒)에 도전해볼 만하지 않은가.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