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선동한 폭도들이 의회의사당을 유린하는 동안 도널드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광기의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다. 국내 한 언론의 미 언론 보도 종합에 따르면 트럼프는 "거의 흥분 상태였고 완전히 괴물 같았다"고 한다. 의사당 폭도들을 "미국의 애국자"로 치켜세우면서, 자신의 부통령 펜스는 선거인단 개표를 막지 않는다며 배신자로 몰았다. 보도는 트럼프의 광증을 "현실을 직시할 수 없는" '벙커 멘탈리티'라 했다.
'벙커 멘탈리티'는 고립무원의 비이성적인 심리상태를 의미하는 조어로 보인다. 외부와 단절된 벙커에 갇히면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이 불가능해진다. 베를린 함락 직전 총통벙커에서 결사항전을 지휘한 아돌프 히틀러의 최후가 그랬다. 그는 지하 10m 벙커 안에서 연합군에게 반격과 수비를 명령했지만, 이를 수행할 독일군은 궤멸했고, 2인자 헤르만 괴링은 대놓고 등을 돌렸다. 히틀러는 벙커 안의 가상현실에서 희망과 절망의 극단을 오가는 광기로 제국의 최후를 지휘했지만, 그렇다고 패전의 현실이 변할리 없었다. 그는 약혼녀 에바 브라운과 벙커 결혼식을 올린 다음 날 자살로 생을 마쳤다.
임기 말 트럼프도 파국을 향하고 있다. 의사당 폭력 선동은 최악의 정치적 착란이었다. 민주당은 트럼프를 반란 선동자로 규정하고 탄핵을 예고했다. 반란자를 단 하루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에, 공화당도 변명할 엄두를 못 낸다. 백악관 참모들과 장관들은 정권에서 줄지어 하차했고, 대학들은 트럼프의 명예박사학위를 취소했다. SNS 대기업들이 결정적 한방, 벙커버스터를 투하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트럼프 계정을 영구정지하거나 폐쇄한 것이다. 트럼프는 벙커정치의 엑스칼리버를 압수당한 채 온라인 정치에서 삭제될 처지다.
멘붕에 빠진 트럼프는 오락가락한다. 여론의 반전에 놀라 '질서있는 정권 이양'을 발표하면서도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엔 불참한단다. 강성 트럼프 지지자들은 연방의회, 주의회와 바이든 취임식을 겨냥한 무장봉기를 선동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미국의 상식은 트럼피즘의 비상식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결연하다.
미국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을 염원했던 전 세계 이민자들이 일구어낸 유산이다. 그런 미국이 맥락 없는 포퓰리스트인 트럼프가 지지자들과 벙커 정치를 펼치자 속수무책으로 망가졌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와 국민은 트럼프를 역사적인 경종으로 기록할 것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