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담론에 관한 보고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듣고싶은 말
"사랑해"라는 말의 대답으로
충분한 말은 "사랑해"이기 때문
열 두개의 장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열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독립된 장면으로 구성된 열개의 장은 사랑의 기원, 사랑 찾기. 너무 많은 사랑, 사랑의 고통, 인공적 사랑, 사랑과 가족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셰익스피어와 라신의 작품에서 대사를 인용하기도 하고 사랑에 관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탐구하기도 하며 심리학과 생물학에서 말하는 사랑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렇게 이 보고서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사랑에 빠진 표정'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며 사랑은 행복이 아니라 희열이라고 보고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반복적으로 보고라는 말과 보고서라는 말을 쓰는 까닭은 이 작품은 사랑을 주제로 한 인물 사이의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표정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할 뿐 사랑에 빠진 인물의 이야기는 없다는 말이다.
아무튼 '사랑에 빠진 표정'이라는 말에는 묘한 그 무엇이 있다. 여기 사랑을 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사랑을 하는 사람이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고 하자. 여기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에 빠진 표정을 볼 수 있을까. 당연히 볼 수 없다. 사랑을 하는 사람의 사랑에 빠진 표정은 사랑을 하는 사람 자신이 볼 수 없다. 그 표정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을 받는 사람의 표정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표정은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표정이 아니다.
나르시스와 에코의 이야기에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나르시스가 수면에 비친 나르시스를 잡으려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 모습을 멀리서 에코가 지켜보고 있다(여기서는 나르시스보다 에코가 중요하다). 에코는 나르시스를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에코는 벌을 받아서 스스로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누군가가 한 말을 따라서 할 수는 있다. 다만 끝 부분만 따라 할 수 있다. 에코가 메아리라는 뜻인 까닭이다.
수면 위의 나르시스를 바라보며 나르시스가 말했다. 나르시스는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잡으려 한다. 하지만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사라지고 만다. 아무리 반복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르시스가 말했다. "사랑해." 그 장면을 지켜보던 에코가 이때다 싶어 따라서 말했다. "사랑해." 에코가 얼마나 하고 싶었던 말이던가.
그런데 실상은 이렇다. 나르시스가 한 말은 "Why do you fly from me"였다. "왜 도망가니"정도로 옮기자. 그러니까 "사랑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자. 에코가 그토록 간절하게 하고 싶었던 그 말이다. 에코가 따라서 말했다. 에코는 다른 사람의 말을 다 따라서 할 수가 없으니 끝 부분만 따라서 말했다. "Fly from me"라고. "가버려", "꺼져", "꺼지란 말이야"라는 말로 바뀌어 버렸다. 아마도 에코는 "사랑에 빠진 표정"을 보았을 것이다. 비록 그 표정이 자신을 향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사랑을 하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사랑해"라는 말에 대한 대답으로 충분한 말은 "사랑해"라고 장-뤽 낭시는 말했다. "사랑해"라는 대답으로 충분한 까닭은 '사랑의 의미란 말하는 그 순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며 '그 표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말'이 바로 "사랑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극 '에볼루션 오브 러브'가 보고하는 사랑의 의미를 모두 암기하더라도 '사랑에 빠진 표정'을 볼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랑해"라는 말이 필요할 뿐이다.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