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조안면 청년의 극단선택을 보며
'생계형 저항'에 국가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동부권 7개 시군 특별대책지역도 마찬가지
정부 지속 규제 합당근거 빈약한데 모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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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표 논설위원
2009년 1월19일 새벽,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빈 건물을 철거민 32명이 기습 점거했다. 국내 대기업 건설사가 주도하는 재개발사업 보상에 불만인 세입자와 철거민 단체 간부들은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인화물질을 반입했다. 다음 날 새벽 경찰의 무력 진압과정에서 불이 나 민간인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고, 농성자 전원이 연행됐다. '용산참사'의 전말(顚末)이다.

이 사태를 보면서 '국가의 역할을 생각하게 됐다'는 유시민 작가는 '국가란 무엇인가'란 책을 냈다. 유 작가는 '명백한 불법행위라 할지라도, 공권력을 무분별하게 행사하여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국가의 행위는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농성) 빌딩에서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그것이 훌륭한 국가가 할 일이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2017년 7월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20대 청년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아버지를 도와 식당을 운영하는 건실한 청년이었으나 버거운 생을 버텨내지 못했다. 식당 건물은 무허가였고, 행정·사법 합동단속반에 적발돼 강제 철거될 처지였다. 유서를 본 유가족은 오열했다. "이 가게 잘 될 수 있는 수호신이 될게요". 마지막 순간에도 청년은 가족의 생계가 달린 식당 걱정을 놓지 못했다. '용산 세입자들의 국가'와, '조안면 청년의 국가'는 무엇이 다른가.

그가 나고 자란 조안면 운길산역 일대는 1975년 팔당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린벨트에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더해진 중첩규제로 개발이 묶였다. 생계가 막막한 주민들은 버섯재배사와 창고, 주택을 식당과 카페로 무단전용했다. 행정·사법 당국에 수차례씩 적발되면서 과징금이 쌓였고, 전과자가 늘었다. 2016년 한해 검찰 단속으로 84개 업소가 문을 닫았다. 계속되는 단속과 처벌에 주민들은 분노했고, 단체 행동에 나섰다. 환경부가 내놓은 대책은 고작 푸드트럭 허용이었다.

주민들은 지난해 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상수원관리규칙'에서 규제하는 건축물의 설치, 영업허가 제한은 불합리하다.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 재산권을 침해한다. 공권력 행사주체인 남양주시도 주민 편에 섰다. '상수원보호구역 규제로 지방자치권과 시의 재산권 행사에도 침해가 발행한다고 판단해 지역주민들과 함께 헌법소원 청구에 참여했다'고 한다.

강남·분당과 가까워 개발 압력이 거센 광주시 오포읍 일대는 공장 난개발의 대표 사례다. 상수원 보호에 수도권정비계획까지, 거미줄 규제로 공업지역마저 1천㎡ 이상 규모의 생산시설이 원천 봉쇄된 결과다. 그물망을 피하려는 탈·불법에 편법이 횡횡하면서 동네가 망가졌고, 멀쩡한 앞산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맑은 물을 공급해야 한다'며 정부가 특별대책 지역으로 지정한 남양주·광주·양평·이천·여주·가평·용인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광주시 도척면 임야에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배출시설설치제한, 상수원특별대책 1권역, 산지관리법이 적용된다. 반세기 가까이 덧씌운 규제의 틀은 집요하고 가혹하다. 경기도는 동부권 7개 시·군의 그물망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달라고 건의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공청회 자리에서다. 정부는 말이 없다.

오·폐수 처리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하수처리장으로 흘러든 생활용수를 1급수로 정화해 하천으로 돌려보낸다. 환경부는 상수원 규제가 여전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특정 지역에 대한 무기한 중복 규제가 합당하다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는 빈약해 보인다. 그런데도 정부는 주민과 지자체의 아우성을 모른 체한다.

1973년 팔당에 물이 차고, 주민들은 조상들의 땅을 떠나야 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부자 마을이 될 것이라던 정부는 2년 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었다. '식수원을 깨끗하게 지켜야 한다'는 규제의 당위성은 눈부신 문명 앞에 무력해진다. 주민들의 의문은 증폭되고, 불만은 분노로 번지고 있다. 남양주에서 발화한 주민 저항은 폭발력을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의 침묵은 사태를 키울 뿐이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