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초 '뭘 보러갈까' 설렘 기약없고
새해는 하루하루 무심히 흘러만 가
역병 지나면 공연·영화 맘껏 볼것
예술가들 힘든 시간 절망하지 말고
내일의 작품위해 힘 내기를 바란다

그나마 일상에서 가까운 공간들도 이 정도니 공연장은 더하다. 공연 시간을 맞추느라 서두르던 저녁이 대체 언제쯤이었는지 기억도 안 날 지경이다. 온라인 공연을 대신 보면 되지 않느냐고? 사실 지난 일 년 동안 온라인 공연을 꽤 많이 봤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편했다. VIP석에 앉은 것처럼 공연자의 생생한 표정을 잡아내는 카메라, 딴 짓을 할 수도 있고 심지어 뭘 먹으면서 볼 수 있는 내 집에서의 쾌적한 관람 경험은 매력적이었다. 실시간으로 질문하고 답변하는 댓글 창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 많은 온라인 콘텐츠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시들해졌다. 사실 온라인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서는 오프라인보다 훨씬 더 많은 공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이미 높아져 버린 관객들의 눈은 점점 더 화려하고 거대한 볼거리를 찾게 되지만 모든 공연이 그 눈높이를 맞출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온라인 공연을 아무리 많이 봐도 실제 가서 보는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 충족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공연 자체의 감동이 희미해진 것은 물론이고, 공연 앞뒤의 일상적인 시간들이 무엇보다 그립다. 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 당일의 날씨, 함께 본 사람, 자리를 안내하는 하우스 매니저들의 목소리, 표를 찾고 프로그램 북을 사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야 비로소 착석할 수 있는 공연장의 내 자리에 앉았을 때의 안도감, 공연 시작 전의 안내방송 멘트, 함께하는 관객들의 분위기, 공연장 특유의 냄새, 배우의 실수, 자리에 따라 아주 잘 보이거나 아예 안 보이는 어떤 시야들에 대한 기억, 휴식 시간에 재빨리 줄을 서서 마시던 커피의 맛까지…. 공연을 보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음을,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관객인 나조차 이럴진 데, 객석 대신 카메라를 바라보며 무대에 서야 했던 예술가들에게 2020년은 너무 낯선 해였을 것이다. 어쩌다 카메라가 텅 빈 객석을 비출 때면 보고 있는 내가 다 민망해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곤 했다. 뮤지션 오지은은 '공연이 멈춘 코로나 시대, 음악인의 삶을 말하다'라는 글에서 "이 직업은 비상상황이 오면 제일 먼저 중단당하는 직업"이라며 "코로나가 끝나면 공룡만 살아남을지도 모르겠구나"라고 토로했다.
영국에서는 #SAVETHEAETS라는 해시태그가 돌고 미국에서는 공연장을 지키기 위해 #SAVE OUR STAGES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조용하다. 브이홀, 에반스라운지 등 민간 공연장들이 하나둘씩 폐업하고 있다는 데 정부지원이 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고 공공시설의 공연장은 문을 닫고 있을 뿐이다.
연초에 좋아하는 공연장의 패키지들을 살펴보면서 '뭘 보러 갈까' 고르던 설렘은 여전히 기약할 수 없고 새해는 하루하루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아직 끝을 알 수 없는 역병이 지나가고 나면 무엇보다 공연을, 영화를, 전시를 마음껏 보러 가고 싶다. 사진작가 이모젠 커닝햄은 "내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바로 내일 찍을 사진 중에 하나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올해에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예술가들이 절망하지 않고 바로 내일의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기를, 그 계속할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길 바란다.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