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는 드라마가 좀 거북하다
결혼도 안한 女주인공이 임신하자
시부모될 사람들은 낙태 권유·압박
이해관계 따진 '생명 경시' 몰상식
초저출산시대, 작가 인식 더 문제

사진(김향숙) (1)
김향숙 경기도 인구정책담당관
재혼가족의 성인 자녀들 일상을 다룬 일일드라마가 지금 방영 중에 있다. 처음에는 소재나 구성도 신선하게 다가오고 내용도 좋았는데, 요즘에는 좀 거북함이 느껴진다. 여주인공이 결혼을 안 한 상태에서 임신을 했는데, 주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낙태하라고 권유하거나 압박을 가한다. 그것도 당사자의 처지를 생각해서 하는 조언이기보다는,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는 데 기인한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기 아버지의 부모들 행태다.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아들을 다른 여자와 혼인시키려는 의도에서 여주인공을 압박하는 남자의 아버지나, 잘난(?) 아들의 발목을 잡는다고 친구의 의붓딸을 핍박하는 남자의 엄마나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인물들이다.

앞으로 이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나 현재까지 진행 상황으로 볼 때, 아마도 종국에는 여주인공이 출산을 하고, 아이 아버지와는 결혼을 할 것 같다. 어쩌면 결혼을 먼저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와 같은 드라마의 결론보다 중요한 것이 이야기의 전개과정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가치관 내지 사회인식이라는 사실이다.

혼외 출산한 사람을 '미혼모' 또는 '미혼부'라고 하여 사회적 낙인의 대상으로 보고 그러한 상황에 이르지 않기 위해 당연히 낙태해야 한다는 생각은 생명존중의 윤리에 저촉될뿐더러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가 초저출산에 따른 인구문제다.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자녀 수를 합계출산율이라고 한다. 인구가 현재 수준을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1명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인구대체율에 미달하면 저출산이라고 하며, 합계출산율이 1.3명에 이르지 않으면 초저출산이라고 한다. 이 지표가 2019년에 1명을 밑돌게 되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는데, 2020년에는 인구감소현상까지 나타났다.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2020년 말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가 전년도에 비해 감소되었는데,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앞지르게 된 것이 그 이유이다.

통계를 보면 출생아 수는 2015년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사망자 수는 해마다 기복이 있으나 2019년의 경우 전년보다 떨어졌고, 지속적인 의학의 발달로 앞으로도 그 수가 떨어진다는 가정 하에 2028년 이후에나 인구감소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했는데, 그 시기가 앞당겨진 것이다.

여기에는 코로나19의 영향도 일부 있을 것이다. 코로나가 사망자 수를 증가시키고, 미혼 남녀들의 결혼과 출산을 연기하게 함으로써 사상 처음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경기도의 경우 다른 4개 시·도와 함께 작년에도 인구가 증가한 지역에 속한다. 그리고 경기도는 서울을 비롯한 인근 지역으로부터의 유입 인구가 많은 편이어서 아직 인구감소를 직접 겪고 있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나 스웨덴 같은 유럽 국가들은 합계출산율이 1.8명 정도로 높은 편인데, 출산휴가 및 양육수당 등 정부의 제도적 개입에도 힘입은 바 있겠으나, 50%가 넘는 혼외 출산율도 그 한 원인으로 꼽힌다. 결혼을 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아서 주변 사람들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잘 키울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 된다면, 우리에게도 약간이나마 긍정적인 신호가 되지 않을까.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 그러나 지속적인 계도와 노력은 필요하다.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한 분야가 미디어, 특히 공중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방송 중에 '미혼모'라는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거나, 미혼모가 되지 않으려면 낙태해야 한다는 말들을 서슴없이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김향숙 경기도 인구정책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