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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 전야. 이순신이 휘하 장수들을 불러모아 말했다. "병법에 이르길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고(必死則生) 반드시 살려 하면 죽는다(必生則死) 하였다. 너희 각 제장들은 살 마음을 먹지 말라.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기면(小有違令) 즉시 군율로 다스릴 것이다(卽當軍律)."

명령은 지엄했지만 공포는 현실이었다. 해전 당일 삼백여척의 적선을 마주한 조선 수군은 겁에 질렸다. 이순신의 배가 적진을 향해 돌격했지만 부하 장수들은 전선 뒤에서 머뭇댔다. 장군은 깃발을 올려 집합 명령을 내렸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도착하자 일갈했다. "안위야 군법에 죽으려 하느냐." 뒤이어 도착한 중군장 김응함도 추상같이 질책했다. 정신이 번쩍 난 안위와 김응함은 그제서야 적진 한복판으로 돌격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명령을 수행하는 조직이 군대다. 상관의 명령이 안먹히는 군대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강한 군대와 유능한 지휘관들이 상명하복의 군기 유지에 애쓰는 이유다. 이순신은 군기 빠진 군관과 병졸들의 볼기를 쳤고, 탈영병의 목을 베어 군영에 효시했다. 군기 위반엔 인정을 두지 않은 덕분에 전장의 공포 한 가운데서 겁에 질린 부하를 적진에 돌격시킬 수 있었다.

육군 부사관들이 육군참모총장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남영신 총장은 지난 연말 육군 주임원사들과의 화상회의에서 "나이 어린 장교가 나이 많은 부사관에게 반말로 명령을 지시했을 때 왜 반말로 하느냐고 접근하는 것은 군대문화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장교가 부사관에게 존칭 쓰는 문화, 그것은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발언했다. 이에 주임원사 몇 명이 총장 발언으로 "인격권을 침해당했다"고 진정서를 작성했단다.

참모총장이 직접 훈시에 나설 정도면 장교와 부사관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인 모양이다. 실제로 장교의 반말 지시를 무시하고, 장교에게 경례를 생략하는 부사관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장교들이 부사관과 병사들에게 수모를 당하는 군기 문란 사건도 속출했다. 물론 장교들도 베테랑 직업군인을 예우하고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예우와 존중이 상명하복의 군기를 깨트릴 정도면 군대는 무너진다. 하물며 선임상사들이 4성 장군의 훈시를 치받았으니 볼장 다 본 군대 아닌가.

부사관들은 '인격권 침해'를 우려하지만 국민은 '당나라 군대'를 걱정한다. 국민권익위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걱정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