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비평의 한계를 벗어나 정치적 다툼의 당사자처럼 행동했습니다.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고 공직자인 검사들의 말을 전적으로 불신했습니다.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습니다. 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단편적인 정보와 불투명한 상황을 오직 한 방향으로만 해석해 입증 가능성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고 충분한 사실의 근거를 갖추지 못한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2일 재단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이다. 역시 유시민은 '말'보다 '글'이 낫다는 생각이다. 사과의 진정성은 '사과문 약속' 이행 여부로 증명되겠지만 '사과문' 자체는 사과의 정석을 담은 명문이다.
'대립하는 상대를 악마화했고', '정서적 적대감과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져 '사실의 근거를 갖추지 못한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유시민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은 '검·언 유착' 의혹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채널A 기자 발언요지'를 올렸다. "눈 딱 감고 유시민에게 돈을 줬다고 한마디만 해라.", "문 대통령 지지율은 끝없이 추락하고 다음 정권은 미래통합당이 잡게 된다." 하지만 검·언유착 수사와 재판에서 이같은 발언요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단정한 '검·언 유착 사건'에서 '검'의 실체가 희미해지는 상황이다. 최 의원은 '사과' 대신 '법정'을 택할 모양이고, 추 장관은 침묵한다.
현직 부부장 검사 진혜원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에 대한 적대감도 이해하기 힘들다. 진 검사는 박 전 시장 성추행 사실을 인정한 법원을 향해 "사법이 (나치) 돌격대 수준으로 전락한 징후"라고 했다. 또 '꽃뱀'과 '문란한 암컷'을 언급한 페이스북 글을 올렸는데, 누가 봐도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를 겨냥한 조롱이었다. 법원과 피해자를 향한 진 검사의 과도한 악마화와 정서적 적대는, 유시민의 사과문을 그대로 인용해도 사과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유시민의 사과'를 둘러싸고 진정성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지식인 다운 양심'은 존중해야 한다. 양심 없는 지식인과 정치인이 사회를 갈라놓고 문명을 훼손하는 시국에, '유시민의 사과'가 경종을 울리길 바란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