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촉구하는 지지자들의 시위가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암살 위기에서 극적으로 회생한 나발니는 독일에서 독극물 중독 치료를 받고 지난 17일 귀국한 뒤 구금됐다. 시위는 지난주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극동 지역에서 시작돼 러시아 주요 도시로 번지고 있다. 당국은 코로나19 확산 위험을 들어 집회를 불허하고 3천여명을 체포했으나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
시위대는 나발니 석방을 외치지만 푸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을 위한 호화 별장과 숨겨진 딸의 행적을 폭로했다. 흑해 연안 휴양도시인 겔렌지크에 건설된 '푸틴 궁전'은 모나코의 39배 크기다. 1층에는 온천과 영화관, 분수대가 있는 야외정원이 있다. 2층에는 카지노·영화관·공연장, 지하층에는 하키 링크와 교회, 비상 대피로가 갖춰졌다.
푸틴이 내연녀와 사이에서 낳았다는 루이자(17)가 구찌 마스크를 쓰고 술을 마시는 장면도 공개됐다. 입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샤넬, 발렌티노 등 명품으로 치장했다. 영국 학교에 다니는 또래 친구와 춤추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유학 가능성이 제기됐다. 엄마는 스베틀라나 크리보노기크(45)라는 여성으로, 금융 주주사 지분과 여러 부동산을 소유한 1억 달러 자산가라고 한 매체가 주장했다.
크렘린 궁은 이런 주장들을 부인했다. 그런데도 푸틴과 측근에 대한 의혹은 더 증폭되고 있다. 지난해 독극물 테러를 당해 목숨을 잃을 뻔한 나발니가 기사회생해 가해 의심자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 푸틴은 나발니를 철창에 가뒀으나 공수(攻守)가 바뀐 양상이다.
푸틴은 48세(2000년)에 러시아 3대 대통령에 취임해 20년 넘게 재임 중이다. 3연임이 금지된 2008~20012년 대통령 자리에 바지사장(메드베데프)을 내세워 총리를 지낸 뒤 다시 왕좌에 복귀했다.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리고 연임 제한규정도 없앴다. 종신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새해 들어 푸틴의 앞날에 먹구름이 짙다. 그를 둘러싼 거악(巨惡)의 실체가 속속 까발려지고 있다. 나발니 석방으로는 성난 민심을 달랠 수 없는 험한 분위기다. 젊음을 과시하려 얼음물에 뛰어들었으나 건강하지 않다는 이상 징후는 한둘이 아니다. 동토의 땅 러시아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