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여권발 사과(謝過)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주거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한 국민들에게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자신있다"던 2019년 국민과의 대화 발언은 무색해졌다. 하지만 송구하다는 대통령의 사과가 '낙심한 국민'들의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무주택 서민들은 폭등한 전·월세 가격에 울고 청년들은 제집 갖기를 포기한 채 영혼을 끌어모아 주식시장에 열중하고 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실체가 없었던 검찰의 계좌추적을 사실로 단정한 잘못에 대해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다"고 자아비판했다. 그러나 유 이사장이 계좌 사찰 당사자로 지목했던 한동훈 검사장은 아직도 '채널A 검·언 유착' 사건 피의자다. 중앙지검 수사팀이 한 검사장 무혐의 결재를 올렸지만 이성윤 지검장이 외면한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여비서 성추문 의혹에 대해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직권조사 결과를 밝히자 더불어민주당의 사과가 폭주했다. 피해 여성을 '피해호소인'으로 격하한 남인순 의원은 "깊이 사과 드린다"고 사과문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낙연 당대표도 "피해자와 가족들께 깊이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청년 최고위원 박성민은 "2차 가해와 민주당의 부족한 대처로 상처받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한 대통령의 사과는 부동산 대란에 표류하는 국민에겐 공허하다. 유시민의 사과는 '정서적 적대감'과 '논리적 확증편향'의 대상이었던 윤석열과 한동훈을 비켜가는 바람에 화려한 수사만 남았다.
민주당 지도부의 사과가 6개월 지연되는 동안 피해여성은 집단적인 2차 피해를 감수했고 '박원순 살인자'로 고발될 처지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듯 사과도 마찬가지다. 이 대표는 피해자에게 사과했지만 친문진영의 2차 가해엔 침묵한다. 남 의원의 육성 없는 사과문은 온몸으로 2차 가해를 견뎌 온 피해자에게 가혹할 정도로 건조하다.
민주당은 정의당 성추행 사건이 벌어지자 "충격을 넘어 경악"이라며 "무관용 원칙으로 조치를 취하라"는 논평을 냈다. 권인숙 의원은 "부끄럽고 참담하다"며 자기 당 논평을 사과했다. 새해 여권발 사과 퍼레이드에서 유독 권 의원 사과만 가슴에 남는 건 왜일까.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