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근대유산' 판단 강제성 없어
보존땐 시비 반납 가능성… 추가예산도
인천 부평구가 일제강점기 노동 수탈의 흔적인 '미쓰비시 줄사택'의 존치 여부를 두고 3개월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부평구는 지난해 10월 문화재청으로부터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 보존 협조 요청' 공문을 전달받고, 줄사택을 철거하고 공영주차장을 조성하려던 사업을 중단했다.
문화재청은 줄사택을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의 실상을 보여줄 수 있는 역사적 장소로, 시대적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보존·활용해야 할 근대문화유산으로 판단했다. 단, 문화재청 요청은 '협조' 차원이기 때문에 강제성은 없다. 부평구 선택에 따라 줄사택의 운명이 결정되는 셈이다.
줄사택 '존치'와 '철거' 중 어떤 선택을 해도 부평구 입장에선 행정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평구는 이미 줄사택을 철거하고 공영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시비를 확보해 일부를 부지 매입 비용으로 썼다. 줄사택을 보존키로 하면 시비 20억원을 반납해야 할 가능성도 있고, 인근에 대체 시설을 조성하기 위한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부평구가 줄사택을 철거할 경우, 일제 강점기 역사·생활사적 가치를 내포한 건축물을 철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줄사택은 미쓰비시 부평공장의 노동자 합숙소로 사용되면서 강제 징용의 역사를 내포하기 때문에 철거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인천시립박물관은 2012년 발간한 '인천 근현대 도시유적'으로 줄사택을 선정했다.
부평구는 줄사택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검토하고 주민 입장을 수렴하기 위해 다음 달 중순까지 주민과 건축·역사 분야 전문가, 구의원 등 15명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부평구는 협의체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늦어도 오는 4월까진 줄사택 존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요청 이후 실시계획까지 마친 주차장 조성 사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만큼 사업 일정·비용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최대한 이른 시일내에 논의를 매듭 짓겠다는 게 부평구의 구상이다. 주민과 전문가 등이 줄사택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자리는 2019년 개최된 학술 토론회 이후 2년 만이다.
부평구 관계자는 "몇년 전에는 줄사택 철거를 요청하는 주민이 많았으나 최근엔 줄사택 활용 방안을 제시하는 주민이 많아졌다"며 "주민들 생각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이를 반영해 존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