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만에 자른 머리 덕에 기분 새뜻
전혀 경험 못해 본 세상 미용사와
알수 없는 이야기 너무한 탓인지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올해는 바랐던 소망 꼭 실현 되길

"주말이라 예약이 많아서 못할 줄 알았는데요."
동네에서 나름 '가성비' 좋은 미용실이라 주말에는 예약할 엄두를 못 내곤 했는데 토요일 오후에도 매장 안이 휑하다.
"요즘 계속 이래요.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쓴 채로 조심스럽게 나누는 대화 사이로 한숨이 섞인다.
"그래도 머리는 깎아야 하지 않아요? 미용실은 그나마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미용사 생활 이십여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는 원장 겸 미용사는 매출이 20~30%가량 줄었다고 고백한다. 그나마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운영해온 터라 단골이 많아 타격을 덜 받은 편이란다. 능란한 가위 놀림에 함부로 자란 머리카락이 서걱서걱 잘려나간다.
"손님들이 커트 말고 퍼머넌트나 염색 등은 거의 안 하시니까요."
이미용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청결과 위생이지만 예의와 치장의 목적도 크다. 그러니까 머리를 자르고 꾸미는 일이야말로 개인적 활동을 넘어선 사회적 행위인 셈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이 괴이한 역병의 창궐로 세상이 멈추고 모든 집합 활동이 축소되거나 취소되었다. 나 역시 얼굴의 절반을 마스크로 가리고 눈만 빼꼼 내놓은 채 움직이다 보니 지난 일년 동안 화장이라는 걸 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마스크 속에 숨은 입술에 립 제품을 바른 적은 거의 없다. 새 옷을 살 일도 없었고 특별히 머리를 만지고 손질할 필요도 없었다. 미용실, 화장품 가게, 옷 가게, 그리고 그들에게 재료를 납품하는 회사들이 모두 고객을 잃은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도 학교를 안 가고 재택 수업을 받으니, 커트 손님조차 거의 없어요."
아차, 학교의 비대면 수업까지 미용실 영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직장인들도 머리를 새로 하면 눈치가 보인대요. 웬만하면 외부와의 접촉면을 줄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요."
윙윙, 드라이어 바람에 잘린 머리카락이 흩어져 날린다. 나 또한 작년에 수업과 강연, 행사의 취소를 숱하게 겪었고, 그 결과 수입도 크게 축났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외출과 소비가 줄어들어 겨우겨우 수입과 지출을 엇셈한 덕분이다. 지난해는 견뎠지만 올해는 또 어떻게 견딜지, 고정 지출이 따로 없는 나야 그렇다 쳐도 매장이며 직원들을 거느린 원장은 걱정이 태산일 수밖에 없다.
세상이 멈춘 후에야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세상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사람들끼리 만나면서 돌아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자원을 소비하고 탄소를 배출하기도 하지만, 사람들끼리 만나 어울리면서 서로 서로를 먹여 살리고 있었던 게다. 그리고 그 부대낌으로 사랑하고 미워하는 에너지를 만들어내어 가없는 시간을 흘려보냈던 게다.
멈추어버린 세상, 멈추어버린 사람들의 관계와 멈추어버린 감정과 마음. 생계의 위협과 관계의 정체는 개개인을 고립시키고 절망에 빠뜨린다. 아무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없어 함부로 뻗치며 자란 머리카락이 우울한 얼굴을 덮는다.
"그래도, 점차 좋아지겠죠."
미용사는 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듯 중얼거린다.
"그럼요. 그래야죠."
간만에 자른 머리 덕분에 목덜미가 시원하다. 기분도 짐짓 새뜻해져서 나도 목청을 돋워 대답한다. 그리고 미용사와 나는 동시에 입을 다문다.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살아내면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탓이다. 하지만 부디, 미용실에서 바랐던 작은 소망이 올해는 꼭 실현되기를.
/김별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