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의 아들인 경종은 희빈 장씨 소생이다. 영조는 경종의 이복동생으로, 후궁 숙빈 최씨 소생이다. 비운의 사도세자는 영조와 후궁 사이에서 태어났다. 순조 역시 아버지 정조와 후궁의 소생이다. 조선 후기 왕들은 대체로 정실인 왕비가 아닌 후궁들의 자식이다.
왕자를 낳은 후궁의 위세는 정실과 자리바꿈할 정도였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해 서인(庶人)으로 강등하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책립(冊立)했다. 이런 변고로 10년 넘게 이어진 서인의 권력이 남인으로 넘어갔다. 정실로 등극한 희빈은 분에 넘는 권세에 취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사약을 받고 스러졌다.
왕자 씨를 낳은 후궁이라고 죄다 유세를 떤 건 아니다.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는 바라던 아들을 낳았다. 세자에 책봉돼 훗날 왕위에 오른 순조다. 정조의 총애에도 수빈은 현명하고 겸손했다. 원자를 낳은 후에도 왕비인 효의왕후를 극진히 섬겼고, 혜경궁 홍씨 등 윗분들에게 예의를 다했다. 궁 안팎에서 어진 현빈이라는 칭송을 들었고, 평온한 삶을 살다 남양주 휘경원(徽慶園)에 잠들었다.
여의도 의사당에 뜬금없이 '조선의 후궁'이 소환됐다. 여야 여성의원들에 의해서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을 향해 "후궁이 왕자를 낳았어도 이런 대우는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고 의원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는 점을 비꼰 것이다. 앞서 고 의원은 "광진을 주민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했다"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출마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고 의원과 여권은 물론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고 의원은 '광진구민들을 모욕하는 발언'이라며 모욕죄 혐의로 고소장을 냈다. 40명 넘는 민주당 의원들은 조 의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기자회견문을 돌렸다. '도를 넘는 막말이자 시대에 남을 망언'이라며 국회 윤리위에 제소했다.
조 의원은 사과했으나 여진은 가라앉지 않는다. 21대 국회 들어 여의도의 입들이 더 사나워지는 양상이다. 어지간한 막말은 놀랍지도 않게 됐다. 얼마 전, 야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두고 여당 의원이 미싱(재봉틀)을 보내겠다고 했다. 입을 꿰매려 했는데, 생각보다 비싸 실행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국회에 미싱 하나 갖다놔야겠어요'라는 국민이 많을 것 같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