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로 '상자끈'… 손목에 걸고
문학동 저층 다세대주택 내달려
'야속한 눈' 언덕중턱 차량 멈춰서
"업무환경 개선" 오늘 노조 총파업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촌에선 구루마(수레)가 무용지물이니 뛰는 게 가장 빠릅니다."
28일 오전 10시30분께 인천시 미추홀구 문학동의 한 빌라 앞. 우체국 택배 노동자 조병길(49)씨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조씨가 맡은 구역은 아파트 두 곳을 제외하곤 저층 다세대주택이 모여있는 곳이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은 없었다. 눈이 내리는 날엔 일이 지체되기 때문에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조씨는 가장 부피가 큰 스티로폼 택배 상자에 투명 테이프를 둘러 '끈'을 만든 뒤 손목에 걸었다. 물품 2개를 양손에 들고 남은 하나는 옆구리에 끼운 뒤 목적지를 향해 내달렸다. 아파트에선 수레에 한꺼번에 택배를 싣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전달하면 되는데, 다세대주택이 많은 곳은 일일이 들고 뛸 수밖에 없다.
이곳을 포함해 숭의동, 용현동 등 다세대주택이 많은 지역은 이런 어려움 때문에 택배 기사들이 자주 바뀐다고 한다.
조씨는 "보통 모든 택배회사가 설이 다가오면 물량이 2~3배씩 늘어나기 때문에 우리 같은 택배 노동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다"며 "이번 파업을 통해 실효성 있는 해법이 마련돼야 택배 노동자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은 눈까지 내려 배송을 더욱 어렵게 했다. 오전 11시께 인근 골목길 언덕 중턱에는 한 택배 탑차가 멈춰 섰다. 갑작스럽게 내린 눈 속에 타이어가 파묻힌 것이다.
60대 택배 기사는 차에서 내려 10분간 차량 타이어 아래에 쌓인 눈을 파내기 반복했으나 타이어는 헛돌기만 했다. 그는 서둘러 탑차에서 스노우 체인을 꺼내 타이어에 끼우고 공업용 타이로 고정 작업을 했다.
그는 "눈 오면 별일이 다 생기는데,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이런 날엔 일이 언제 끝날지 대중도 안 잡히는데 한없이 늦어지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온라인 거래 활성화와 코로나19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택배 물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들 택배 노동자의 업무 강도는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최근 잇따른 택배 노동자들의 사망은 이런 고된 노동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택배 노사는 최근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는 내용의 사회적 합의를 했지만, 노조는 합의 내용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29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을 선포한 상황이다.
김진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연대노조 롯데택배 인부천지회장은 "택배회사에선 사회적 합의 이후 분류 작업을 돕는 도우미 등 일부 인력을 투입하기도 했으나 현장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지 않는 형식적인 지원"이라며 "과로에 시달리는 택배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명확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