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이 부른 '친구여'
벗 그리워하는 마음 애타게 표출
코로나로 갑갑한 '집콕' 일상화
슬픈 일 외로운 일 함께 나누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 간절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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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운수지회(雲樹之懷)의 뜻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즉 멀리 떠난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설렘의 감정이다.

경기도 화성 출신의 가왕 조용필이 부른 '친구여'(작사: 하지영, 작곡: 이호준)에는 운수지회의 의미가 선명히 드러난다. 곡목이 시사하듯 이 노랫말은 벗에 대한 그리움을 애타게 표출한다.

가사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하늘에서 잠자고' 있는 꿈은 과연 어떤 꿈일까.

또한 꿈이 잠자고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상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 꿈은 실현 여부를 떠나 원대한 것이거나 소박한 것일 수도 있다. 곡명 '친구여' 화자에게 '하늘에서 잠자고' 있는 꿈은 상실되어 가는 꿈이다. 이 꿈은 화자 자신의 꿈이거나 친구와 계획하였던 꿈일 수도 있다. 화자는 자신의 이상을 잠재웠던 엄혹한 현실을 직시한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켜켜이 쌓인 채 꿈을 성취하지 못한 아쉬움을 잠자고 있는 꿈으로 대체 투영한다.

이제 화자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운 친구'와의 추억에 깊이 잠긴다. 화자가 못다 이룬 꿈은 정지되어 있다. 하지만 추억은 그의 가슴 속에서 '구름따라' 흐르고 있다. 구름에 달 가듯 발걸음을 옮기는 나그네처럼 친구와 정겨웠던 아련한 추억을 어렴풋이 소환하고 있는 화자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탓일까. 화자에게 친구의 '모습'은 희미한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기억을 아무리 되살려보지만 소용없다. 친구와 함께 보냈던 옛 시절의 추억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화자는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라고 자책하며 운수지회의 그리운 회포를 표출한다.

화자는 친구와의 추억 여행을 다시 회상한다. '옛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타임머신을 탄 화자는 친구와의 옛날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기 시작한다. 다양한 추억 조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절친한 친구와 같이 꿈꿨던 행복한 시절도 떠올린다.

꿈을 위해 처음 도전했을 땐 난관에 봉착했을 것이다. 넘어야 할 장벽이 눈앞에 가로막혀 있었을 것이다. 화자가 언급한 '우리 잃어버린 정'은 도전의 벽을 넘지 못한 억압된 꿈의 반영이다. 누구나 좌절을 경험하면 무력감에 쉽게 빠진다. 하지만 화자는 절망감을 떨치고 재도전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 일환으로 친구에게 '잃어버린 정'을 함께 찾아 나서자고 제안한다.

현재 화자는 친구를 당장 만날 수 없는 불가피한 처지이다. 따라서 '꿈속에서'라도 만나기를 학수고대한다. 꿈속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국경 없는 영토이다. 따라서 화자는 시공을 초월해서 친구와의 그리운 꿈속 재회를 소망한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옛일'을 이렇게 추억한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 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어디에'.

삶을 살면서 슬픈 일과 외로운 일이 발생해도 이것을 친구와 같이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든다. 기쁜 일을 공유하면 그 기쁨은 두 배로 늘어난다. 화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화자와 친구에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두 사람은 오래전 희망찬 기대에 '부푼 꿈'을 설계하였다. 또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맹세한 '굳센 약속'의 성취를 꿈꾸었다. 그런데 지금 화자는 그 약속의 실현이 '어디에' 와 있는지 반문한다. 그래서 화자의 꿈은 아직도 하늘에서 잠자고 있는 듯 싶다.

운수지회는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떠도는 구름과 관직으로 은유되는 굳건한 나무 사이에 발현되는 그리운 마음이다. 즉 정처 없는 구름 친구와 정처 있는 나무 친구는 각자 상반된 삶을 영위한다. 둘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재회의 순간을 염원하면서 보고 싶은 그리움이 골수에 사무친다.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로 갑갑한 '집콕' 생활이 일상화되고 있다. 각자의 꿈이 집에서 잠자는 심리적 영어(囹圄)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럴수록 친구 간 운수지회의 그리움이 간절한 요즘이다.

/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