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추석은 명절답지 못했다. 귀성객은 눈에 띄게 줄었고, 공원묘지는 진입로부터 차단했다. 조상묘 벌초는 대행업체에 맡겼고, 차례·성묘는 생략하거나 간소화했다. '조상님은 어차피 비대면, 코로나 걸리면 조상님 대면'이란 말이 소셜네트워크에 돌았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이동을 자제하라고 권했다. 시골 마을에 '불효자는 옵니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코로나19가 바꾼 명절 풍속도다.
올해 설은 더 민망하게 됐다. 정부가 이동 권고보다 더 강력한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을 적용하기로 한 때문이다. 공공도서관에 '설 연휴, 찾아뵙지 않는 게 '효도'입니다'란 대형 걸개가 내걸렸다. '직접 방문은 자제하고, 세배는 온라인으로!'라는 부제가 달렸다. 직계 가족이라도 거주지가 다를 경우 설날에 다섯 이상 모였다 적발되면 과태료 10만원을 물어야 한다. '차례·성묘는 생략, 세배는 비대면'이 대세일 듯하다.
본가를 찾은 아들, 손주, 며느리가 어르신 모시고 옹기종기 만두를 빚는 건 명을 거역하는 행위다. 둘러앉아 떡국을 함께 나눌 친척과 이웃도 부를 수 없다. 아이들의 세뱃돈 주머니도 아쉽게 됐다. 축의·조의금과 마찬가지로 세뱃돈도 온라인 송금이 유행할 조짐이다. 자식도 손주도 오지 않는 고향 어르신들의 낭패감은 어찌해야 하는가.
더 큰 걱정은 이 땅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다. 집합금지와 밤 9시 이후 영업 금지 연장에 한숨이 커진다. 2개월째 이어지는 방역 강화에 이미 초주검들이다. 명절 대목이 악몽이 될 판이라고 하소연이다. 다들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정부는 집단면역을 위해 지속 가능한 방역을 강조한다.
바이러스가 종식되지 않으면서 K-방역에 대한 의문이 커진다. 숨 막히는 출·퇴근 지하철은 괜찮은데 식당에서는 거리를 둬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태권도 발차기는 되는데 복싱 어퍼컷은 왜 안 되는가. 바이러스 창궐을 차단한다는 방역 대책의 과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의문부호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명절 연휴 관광지 숙박시설은 예약이 힘들다고 한다. 인파가 몰려도 9시 이후 상가 문을 닫으면 바이러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가. 총리는 '민생을 위해 설 전에 단계 조정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자영업자가 일상처럼 가게 문을 여는 설 연휴가 됐으면 한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