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료후 조성된 땅 피해시민에… 명분·박수
그러나 한달도 채 안돼 주도권 정치권으로
'4자합의 단서' 변수까지… 아무래도 실수 같아
박 시장은 한 세대가 태어나고 자라 30대 성년이 되도록 수도권매립지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화된 불공정 합의를 꿰뚫어 보았을 것이다. 중앙정부를 포함한 이해관계 주체들 간의 매립지 영구사용을 위한 암묵적 합의가 실재하는 것으로 판단했음직하다. 각오하고 정의와 공정을 외쳤을 것이다. 물론 민선 7기 역점사업인 '구도심 균형발전'이 지지부진하자 인천의 숙원인 매립지 이슈를 대신 띄워 재선 고지를 노린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도권매립지 사용에 종지부를 찍고, 기왕에 조성된 땅을 그동안 가장 큰 피해를 입어왔던 인천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정의고, 공정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새로운 매립지 정책은 지역사회의 그런 희망과 바람을 담아냈다. 명분을 갖췄고, 박수를 받을 만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인천시 자체 매립지의 유력한 후보로 지목된 옹진군의 거센 반발은 일찌감치 예상됐던 일이다. 결사항전을 부르짖지 않는다면, 단식투쟁에 돌입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수상했겠다. 소각장 신·증설을 둘러싸고 몇 개 구가 연합해서 벌인, 합리로 가장한 매우 비합리적인 저항 역시 예측 가능했던 범위였을 것이다. 나머지 기초지자체장들은 시장과의 관계나 정치적인 이해로 인해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거나 아예 내지도 않았다. 그 정도면 시장으로선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재된 폭발력에 비해 실제 후폭풍은 결코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채 한 달도 안 돼 사안의 주도권이 정치권으로 넘어가 버렸다.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이 매립지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안을 제시키로 한 것이다. 박 시장도 합의했다. 인천시로선 먼 바다로 항해하기 위해 닻을 거두고, 돛을 올리고, 물길을 잡기도 전에 배의 키를 놓아버린 꼴이 됐다.
밖에서도 변수가 발생했다. 환경부, 서울시, 경기도 3자가 대체 매립지 공모에 나섰다. 하지만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이어 펼쳐질 대선 레이스를 감안하면 '실패하기 위해 만든' 공모라는 게 중론이다. 공모를 했으나 대체 매립지 확보에 실패했으니 4자 합의 '단서조항'에 따라 기존 매립지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예정된 결론에 이르기 위한 과정으로 보인다. 지난달 29일 임명장을 받은 '실세' 한정애 환경부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매립지 사용 종료 시점이 2025년 이후로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SNS를 통해 항의성 질의도 해봤으나 호수에 돌 던지기와 다를 바 없었다.
정치의 개입이 오히려 문제를 더 꼬이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누구로부터도 욕을 먹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행정이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이쪽저쪽 욕먹을 각오가 돼 있기 때문이다. 맷집도 좋다. 공공의 이익영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누구보다 박 시장이 잘 알 터이다. 새로운 매립지 정책은 어느 쪽으로든 반드시 거센 삼각파도를 맞게 돼 있는 공공선(公共善)의 배다. 박 시장과 인천시가 키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고 가야 했던 이유다. 어차피 별도 보이지 않고, 풍랑도 거친 바닷길이라고 처음부터 모질게 마음먹지 않았던가. 정치권에 덜컥, 키를 넘겨준 건 아무래도 실수 같다. 그들에게 맡겨두면 무역항도 아니고 어항도 아닌, 달빛 어지러운 이상한 항구에 닻을 내릴 수도 있다. 좌초 또는 난파되거나.
/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