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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평화, 저녁엔 자비로운 미소
빛이 비추는 방향따라 다르게 보여
중앙 여래입상 눈뜨고 웃어 매력적
반가사유상, 얼굴 들고 왼쪽을 향해
어색하기보다 되레 '신선한 생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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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시인·여행가
겨울이 시작되면서 여행을 멈추고 집을 지켰더니 발바닥에 가시가 돋고 몸이 답답하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산이면 어떻고 바다면 어떠랴. 그래, 가자 서산 마애삼존불, 누구는 봄에 가면 좋다하고 누구는 만추에 가면 최고라지만 바위부처를 만나러 가는데 계절 따위가 무슨 대수랴.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단풍이 들면 단풍드는 대로 좋을 것이니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보겠다는데 누가 말리랴, 하여 불쑥 떠났다. 서산으로.

가야산 계곡 바위 절벽 하단에 불심 깊은 어느 장인이 바위를 깎고 다듬어 그 속에 숨어있는 부처를 찾아 세상에 알린 것은 백제시대다. 그런 연유로 '백제의 미소'로 불리기도 하는 서산 마애삼존불은 환하게 웃고 있는 여래입상,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있는 반가사유상, 두 손으로 보주를 감싸고 서 있는 보살상이 나란히 있다 하여 삼존불이라 칭한다. 이 여래삼존불은 천연 바위절벽의 동쪽 밑에 조각할 부분을 다듬고 그 위에 여래상은 고부조로, 좌우협시보살은 저부조로 조각하였는데 삼존 전체는 중앙 여래상 두광의 끝을 중심으로 큰 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다.

안내표지판 하단을 보면 "이들 불상의 미소는 빛이 비추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아침엔 밝고 평화로운 미소를, 저녁에는 자비로운 미소를 볼 수 있다. 동동남 30도, 동짓날 해뜨는 방향으로 서 있어 빛을 풍부하게 받고, 마애불이 새겨진 돌은 80도로 기울어져 정면으로 비바람이 들이치지 않아 미학적 우수성은 물론 과학적인 치밀함에도 감탄을 자아낸다"고 적고 있다.

이곳 마애삼존불입상(백제 7세기 전반, 국보 84호, 높이 280㎝)은 그 시대 불상들이 대부분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머금고 있다면 이곳 중앙 여래입상은 눈을 뜨고 호쾌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끝이 납작한 코는 양쪽으로 벌어져 폭이 좁아 높은 코를 보여주는 당시의 불상과는 대조적이다. 넓은 어깨를 타고 통견 대의가 U자형의 큰 호를 넓은 간격으로 그리며 내려오고, 한쪽 끝자락은 왼쪽 팔목에 걸쳤으나 너무 짧아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왼쪽의 반가사유상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팔을 반가한 무릎에 괴고 손을 오른쪽 뺨에 살짝 댄 전형적인 반가사유 자세다. 얼굴의 밝은 미소는 보는 이도 따라 웃을 만큼 매력이 넘친다. 목에 세로로 두 줄의 근육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것은 얼굴의 미소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 장식은 화려한 꽃으로 삼면보관을 씌웠다. 반가사유의 자세를 취할 경우 신체 구조상 머리는 팔을 괸 오른쪽으로 숙여야만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은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숙이는 형태를 취하나 이 상은 얼굴을 들어 그 반대쪽을 향하고 있어 신체 구조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어색하기보다 오히려 신선한 생동감을 준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주차장에서 내려 삼존불이 있는 곳까지는 직선으로 불과 백여미터 남짓하나 눈으로 길이 미끄러워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마애삼존불까지 올라가려면 노약자는 특히 동절기엔 보호자 동행 없이는 힘들 듯하다. 불이문을 지나 마애삼존불이 자리를 잡은 곳은 험한 바위절벽 아래인데 이 불상 정면에 서서 보면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은 바위 틈새에 소나무와 신갈나무가 자라고 있는 걸로 보아 저 바위의 조각은 나무 뿌리가 뻗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틈일 수도 있겠다. 안내소 뒤쪽 가파른 돌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산신각으로 이어지는데 산신각에서 내려다보는 마애삼존불은 천상에서 아득한 발아래 현세를 보는 듯 아찔하다.

내가 있는 곳이 땅이면 그분은 저 위에 계시고, 내가 있는 곳이 산꼭대기면 그분은 아득한 발아래 계시나니, 문제가 있다면 마음 두는 곳, 그가 낮으니 내가 높으니 왈가왈부하는 건 옳지 않다. 위아래를 가려 급을 정하는 것은 인간뿐, 자리가 어디든 가려 앉지 않는 그분, 그래서 부처일 것이다.

/김인자 시인·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