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富 축적 두려움을 멸시로 전환
적·동지 구분 히틀러 학살로 이어져
요즘 정치권 北원전·한일해저터널
잠재 불안 심리, 또 선거판 불러내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 Freud)는 유대인이었다. 5남매 중 4명을 아우슈비츠와 게토에서 잃었다. 그는 간신히 런던으로 망명했다. 왜 유대교를 박해하는가. 그는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분석을 위해 생의 마지막까지 전력을 다했다. 최후의 저작인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가 그것이다. 그는 반유대주의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과감하게 가설을 제시했다. 모세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자 왕족이었을 것이다. 모세가 유대인에게 전한 것은 유일신교이며 모세가 요구하는 유일신교의 준엄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구약성서에 모세 살해에 대한 기록이 없지만 이 기억의 억압 때문에 유대인들은 반복 강박증에 빠져 있다. 그는 유대교의 희생양이나 기독교의 성체의식은 모세 살해에 대한 무의식적 반복이라고 했다.
프로이트는 유대인이 오랫동안 모세의 유일신교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모세 살해에 대한 집단적 억압 때문이라고 했다. 억압된 것은 병리학적이든 정상적이든 반드시 회귀하며, 유대교가 존재하게 된 것은 억압받은 자들의 회귀라는 것이다. 그는 원죄야말로 오랜 세월에 걸쳐 유대인을 박해하여 온 무의식적인 요소이자 유대인의 정체성을 형성한 토대라고 했다. 그의 대담한 가설에 기초한 주장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정신분석이다. 소설이다. 그의 저작 중에서 충격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그러나 반유대주의에 대한 가설과 분석이 남긴 충격의 여파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잔혹함과 절박한 상황에 맞선 용기와 분노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반유대주의는 히틀러의 집단학살로 이어졌다. 프로이트와 달리 슈미트(C. Schmitt)는 히틀러의 권력 장악과 나치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학자였다. 그의 '적과 동지'이론은 이단자에 대한 불관용과 유대인 학살의 토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슈미트의 반유대주의의 논거는 무엇인가. 그도 역시 유대교의 기독교 원죄 부정을 들고 있다. 그는 원죄인 인간의 본성 즉, 악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을 비난했다. 유대교가 예수를 부정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슈미트의 사상을 혐오하는 것은 나치에 끼친 영향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는 반자유주의자, 반민주주의자, 그리고 반의회주의자였다. 그는 바이마르공화국을 보면서 자유주의와 다원주의가 국가를 쇠퇴시킨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가 독재이론으로 평가되는 결단주의와 적과 동지의 개념을 선명히 내세웠던 이유다.
슈미트의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형법적 표현이 다름 아닌 이적행위이다. 우리 형법은 모병이나 시설제공 그리고 시설파괴 이적행위의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위기나 전쟁시에 거론될 만한 이적행위 논쟁이 정치권에서 뜨겁다. 북한에 대한 원전지원 논쟁과 한일 해저터널 논쟁이 그것이다. 친북과 친일, 6·25와 일제강점, 빨갱이와 매국노 프레임. 한국 정치에서 참으로 끈질긴 생명력의 원천이다. 그것은 한국인에게 내재된 원초적 불안과 분노의 바탕이기도 하다. 프로이트가 말한 잠재되고 억압된 심리를 다시 선거판에 불러내고 있다.
그러나 반유대주의와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은 전쟁과 인권침해를 가져왔다. 그것은 일상적이고 평온한 인간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준다.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관을 부정하고 이단자를 배제하는 토대를 만들기 때문이다. 반유대주의나 적과 동지 이론의 참혹했던 역사적 폐해를 보면서 생각한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북풍이나 반일 논쟁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과연 지금의 이적행위나 친일 논쟁은 한반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