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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삼 촉보다 어두운 가슴을 안고 사는 이 꽃을

고사모사(高士慕師) 꽃이라 부르기를 청하옵니다

뜻이 높은 선비는

제 스승을 홀로 사모한다는 뜻이오나

함부로 절을 하고 엎드리는

다른 무리와 달리, 이 꽃은

제 뜻을 높이되

익으면 익을수록

머리를 수그리는 꽃이옵니다

눈 감고 사는 이 꽃은

여기저기 모여 피기를 꺼려

저 혼자 한구석을 찾아

구석을 비로소 구석다운 분위기로 이루게 하는

고사모사 꽃이옵니다

조정권(1949~2017)

권성훈교수교체사진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늦은 가을까지 개화하는 코스모스의 꽃말은 순정이다. 코스모스는 꽃이 지는 계절에 사람 만한 키로 허공을 들어 올리는 꽃. 그것도 들길에 '십삼 촉보다' 엷은 빛깔로 하늘을 채색하면서 '뜻이 높은 선비'처럼 꼿꼿하게 서 있다. 자연스럽게 멈춰서 '함부로 절을 하지도 엎드리지' 않으며 그렇다고 바람을 피하지도, 햇살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꽃을 보기 위해 우리는 들길로 나서야 한다. 눈 감고 사는 이 꽃이 눈 뜨고 사는 우리를 불러내는 것은, 안간힘을 다해 살고 있는 당신 웃음을 돌려주고 싶은 것. '저 혼자 한구석' 무리 속에서 외롭게 사는 당신과 그렇게 피어나는 꽃의 거리. 그러나 코스모스는 '제 뜻을 높이되 익으면 익을수록 머리를 수그리고' 당신에게 소곤대며 그 소리에 웃고 또 웃고 있질 않던가. 그런 당신이 찾아온 발걸음에 가녀린 입술 파르르 반겨 주고 싶은 순정으로.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