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 산 수치는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인물이다. 프랑스의 뤽 베송 감독은 2012년 그의 역정을 주제로 영화 '더 레이디(The Lady)'를 제작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영국에서 평범하게 살다 고국에 돌아와 민주 역정에 뛰어든 이력을 담았다. 주연을 맡은 배우 양자경의 외모가 수치와 닮았다고 해 화제가 됐다.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미얀마 군부 독재가 종식됐다. 배우자가 외국인이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헌법조항 때문에 대리인을 내세우고 외무장관을 지냈으나 이후 군부와 적당히 타협하는 태도를 보여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군부가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탄압하는데도 적극 제지하지 않아 국내외 비난을 샀다. 노벨상을 취소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돌았으나 노벨재단은 유감을 전하는 선에 그쳤다. 2017년에는 아일랜드의 록 밴드 U2의 리더가 그를 향해 '역겨움이 느껴진다'며 국가자문역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U2는 2000년 'Walk On'이라는 곡을 만들어 수치에 헌정한 바 있다.
수치 여사가 11년 만에 다시 가택 연금됐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세력에 의해서다. 2020년 미얀마 총선에서 NLD가 압승한 이후 군부의 쿠데타 설이 돌았다. 군부는 대법원에 대통령, 선관위원장 자격을 무효화 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군 최고사령관은 '선거 부정과 불공정을 지적했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군 대변인은 "군부가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정권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도 역시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쿠데타를 예고하는 대담한 발언이다.
미얀마 정국은 안갯속이다. 시민 저항운동은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최대도시 양곤과 수도 네피도는 NLD 상징인 빨간색으로 뒤덮였다. 쿠데타 친위대는 '군부 독재를 원하지 않는다'는 시위대에 총부리를 겨누지는 않았으나 유혈 충돌의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다.
수치는 조국의 민주화를 쟁취했으나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군부와의 불안한 동거로 이미지가 바랬다. 눈치를 보며 소수 민족 탄압을 방관하다 체면을 구겼다. 영국과 프랑스의 명예 시민권을 박탈당했고, 국제엠네스티의 '양심대사상'과 광주시의 '광주 인권상'이 철회됐다. 동남아 민주화 운동의 대모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