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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평택시 쌍용자동차 본사. /경인일보DB

IMF도 버텨냈지만 비극 못피해

정부·정치권 개입·공허한 약속
직원들 목소리 소외에서 비롯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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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나겠구나'. 본능적으로 알아차렸습니다. 1차 퇴직 권고 명단이 붙었을 때 말입니다. 나이는 많고 고액 연봉에 학자금 지원까지 받고 있는, 한마디로 '고비용 근로자'였으니까요. 선택은 둘뿐이었습니다. 퇴직금을 좀 더 받고 나가느냐, 그냥 나가느냐.

희망퇴직자는 회사가 정상화되면 우선 채용하겠다는 약속이 명단 아래에 적혀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희망퇴직서를 낸 이유였습니다.

20년 넘게 근무한 곳이었습니다. 가정을 일구고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넘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는 않게 살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IMF 당시 구조조정이 이뤄졌을 때도 사무실에서 생산라인으로 일터를 바꾸면서 버텼습니다. 그렇지만 2009년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가 약속을 지키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10년. 그 사이 인생 2막을 열었습니다. 함께 직장을 떠난 동료들도 새 삶을 찾았습니다. 다들 부지런하고 성실했으니까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회사로 돌아간 사람들은 극히 일부였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쌍용차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회사로 돌아 갈 건지 물으면 사실 지금은 선뜻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를 위한 회사였을까, 2009년의 부르짖음에 묵묵히 일만 할 줄 알던 직원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담겼을까. 돌이켜 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삶이, 인생이 누군가의 정치 다툼에, 힘겨루기 속에 희생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지우기가 힘듭니다. 농성 현장에서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매일 늘어났지만, 많은 직원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진정으로 고민했던 이들은 몇이나 됐을까요.

쌍용차의 회생을 바랍니다. 다만 안팎의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 기업이 진짜 살길을 찾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십수년 전의 비극은 정부와 정치권의 무책임한 개입과 공허한 약속, 대다수 직원들의 목소리가 소외된 데서 비롯됐을 테니까요.

/쌍용차 퇴직자 A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