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최근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양계농가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 규정을 완화하자고 농림축산식품부에 정식 건의했다. AI 발생 원점에서 반경 3㎞내의 모든 닭 개체를 무차별적으로 살처분하는 현행 규정이 과도하고 비과학적이라는 양계농가의 반발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수렴해 정부의 정책 변화를 요청한 것이다. 반경 3㎞에서 500m로 살처분 범위 완화와 함께 종계와 산란계에 대한 백신 접종 허용이 핵심이다.

경기도의 건의는 양계농가의 반발에서 촉발됐다. AI가 발생할 때마다 살처분과 재입식을 반복하는 피해를 입었던 양계농가들이 올 겨울 AI를 계기로 정부의 방역정책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특히 AI에 지쳐 밀집사육을 포기하고 많은 비용을 들여 친환경사육으로 전환한 동물복지농장들이 살처분을 거부하고 제기한 법적 대응이 여론을 움직였다.

정부는 2018년 살처분 범위를 500m에서 3㎞로 강화한 방역규정을 올 겨울 AI 사태에 처음 적용했다. 그 결과 도내에서 살처분된 가금류가 1천만마리에 달하고, 이 중 762만여마리는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됐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농가들은 AI로부터 생계를 지키기 위해 이중 삼중의 자발적인 방역 조치로 농장 간 전파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현장 방역의 현실을 외면한 채 살처분 범위를 확대해 기계적인 살처분 행정을 강행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농장별로 방역현장 여건을 살펴 살처분 대상을 선별하는 현장 중심의 방역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다.

정부는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백신 사용도 마다하고 있다. 백신 접종으로 인해 AI 감염 개체 구분이 어려워 조용한 전파가 우려된다는 이유를 댄다. 전문가들의 얘기는 다르다. 백신 접종으로 AI를 발생 원점에서 고립시킬 수 있다고 한다. 백신 접종으로 청정국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반론엔, 축산물 수입국인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정부의 방역 정책은 철저하게 과학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다음으로 고려할 것은 농가의 이익 보호다. 현장에서 제기한 문제가 과학적으로 합당한지, 농가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즉각 검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경기도는 전국 최대 지방자치단체다. 정책 변경을 건의할 정도면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봐야 옳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당장 태스크포스를 조직해 경기도 건의안을 바탕으로 AI 방역정책을 진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