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후원으로 진행되는 이날 행사에는 이종찬 추진위원장과 문희상 전 국회의장, 조광한 남양주시장, 황후연 경기북부보훈지청장, 이철영 남양주시의회 의장 등 3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날 추모식은 코로나19를 고려해 유족과 남양주시 관계자를 중심으로 간소하게 참여한 가운데 남양주시 인터넷 방송인 유튜브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을 통해 중계하고 유튜브 '우당TV'에도 탑재한다.
백사 이항복의 11세손인 영석 이석영(潁石 李石榮 1855-1934)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우당 이회영과 성재 이시영의 둘째 형이다. 이석영 가문은 6명의 영의정과 영의정 추증 3명 등 9명의 정승을 배출한 최고의 가문으로 삼한갑족이라고 불렸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 대감의 양자로 입양되어 1885년 증광시(增廣試) 문과로 급제 후 1904년 종2품인 장예원(掌禮院) 소경(少卿)을 마지막으로 경술국치로 사직했다.
그는 1910년 12월 우당 이회영, 성재 이석영 등 6형제와 같이 전 가족 40여 명이 모든 재산을 정리해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 간부를 양성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해방될 때까지 청산리 대첩 등 독립전쟁의 주역이었다.
광복군 지청천 사령관과 1지대장 김원봉, 2지대장 이범석, 3지대장 김학규 등 광복군 고위 지휘관들이 모두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광복군의 주축으로 활동했다.
이석영은 일제가 '불령선인'으로 지명 수배해 피신하면서 심양과 북경, 천진, 상해 등을 유랑하면서 빈곤하게 생활하다가 지난 1934년 2월 16일 상해에서 서거하여 홍교로(虹橋路)공동묘지에 안장했다.
이석영 선생은 당대 굴지의 재산가였던 양부인 이유원 대감의 재산을 상속받아 엄청난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매천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에 의하면 이유원 재산은 "경기도 양주에서 한양까지 80리 언저리 전답이 모두 이유원의 땅" 이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 재산을 상속받아 모두 정리 후 망명, 독립운동에 바쳤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