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권력에 나약하게 굴복 안돼
한 인간으로 존립해야 하기 때문
각인된 트라우마 치유 어렵지만
자기 스스로 자신 버리지 않는 한
아무도 영원히 고립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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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학원 폭력'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요즈음이다. 이 말은 듣기만 해도 나의 폐부를 찌른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몽둥발이로 살아야 했던 어려운 시절의 일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대학원 가서 힘센 선배 하나가 군대 휴가를 나왔다. 후배들은 이 선배가 반갑다고 신사리까지 나가서 실컷들 술을 마셨다. 1차가 끝나고 2차로 가려고 이동 중에 지금은 없어진 신림극장 앞에서 사달이 났다. 요즘 후배들 '네 가지'가 없다고 일렬횡대 '헤쳐 모여'를 시킨 것이다. 다들 극장 앞에 일렬로 죽 늘어섰을 때 그가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뺨을 한 대씩 후려갈기며 내 쪽으로 왔다. 나는 네 번째쯤 서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맞지 않겠다고 했다. 이러려고 대학원 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일렬횡대는 무너져버렸지만 그로부터 시작된 시련 아닌 시련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자를 맵게 다스리는 야만적 관행은 어제오늘의 일이라고 할 수 없으니, 이런 일은 대학 입학 직후에도 있었다. 같은 학교를 나와 같은 대학에 왔다고 선배들이 뜨겁게 환영을 해준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한 달이나 지났을까, 한국 사회, 특히 학교나 군대 어디에나 있는 이 관행이 고개를 들었다. 선배들이 부른다고, 밤에 기숙사 뒤편 공터에 모이라 해서 가자 바로 앞에서 말한 것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이미 각목이 몇 자루 준비되어 있었고, 일단 엎드려 뻗치라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뜨겁게 친해지려면 이런 통과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때도 나는 맞지 않겠다고 일어섰다. 그로부터 동창회는 가깝지 못한 '공동체'가 되고 말았다.

자신이 체제를 운영하고 그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그렇지 못한 자를 향해 완력을 휘두르고 아무렇게나 욕설을 내뱉고 술잔을 끼얹거나 뺨을 때리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벌인다. 이렇게 해서도 굽히지 않는 자는 이른바 그 '왕따'라는 것으로 다스리려 하는데, 자신들이 중심이 된 어느 곳에서나 그 말 안 듣는 자에 대한 온갖 험담을 늘어놓고 프라이버시고 뭐고 없이 소문을 내돌리고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 만한 일에는 절대 끼워주지 않는 것으로 본때를 보인다. 그뿐 아니다. 그 말 안 듣고 내돌려진 자가 가까스로 작은 기회라도 얻어 자기 스스로 살아 보려 하면 어떻게 그 기미를 알아챘는지 대놓고 나서서 훼방을 놓고도 그것이 권력을 가진 자기의 당연한 권리인 양 으스대는 것이다.

이런 야만적 폭력에 노출된, 고립된 사람이 겪는 고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느 힘 약한 중학생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힘깨나 쓰는 불량배 서넛에 의해 강제로 으슥한 골목으로 이끌려진다. 오늘 한 번 주머니나 책가방 속에 든 돈을 털리고 나면 끝날 일이 아닌, 어제도 내일도 계속될 것 같은 협박과 완력에 노출된 '아이'의 공포심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네들은 일단 한 방씩 돌아가며 가슴이며 뺨이며 명치 끝을 가격함으로써 아이로 하여금 저항할 의지를 품지 못하게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막막한 공포가 그네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아이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 버린다.

그러나 아이는, 절대로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그네들 거짓 권력 앞에 나약한 아이로 굴복해서는 안 된다. 이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또 사회에 나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치졸하고 저열한 횡포에 노출되고도 모자라 그것에 순응하게 된다면, 그의 심중에 깊이 각인된 트라우마는 영영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상처 입은 '아이들'의 세계는 결코 강인할 수 없다. 부정의와 부패에 대한 내성을 키울 수도 없다.

강한 자가 되어라. 어두운 골목을 지배하는 '조폭'의 체제에 저항하라. 고립과 시련을 견디고 자기의 세계를 완강히 지키라. 이것이 불의한 자들을 상대하는 유일한 방책일 것이라고, 오늘도 그런 폭력 앞에 서 있는 아이들, 학생들, 어른들에게 권고하고 싶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버리지 않는 한, 아무도 그를 영원히 고립시킬 수 없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